방심한 세계와 방치된 세계
방심했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 카페를 찾았을 때, 수중에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내 몸의 일부를 두고 온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내 휴대전화를 생각했다. 그곳에 잠깐의 방심으로 방치된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만약 휴대전화에 인격이 있다면, 그(그녀)가 자신을 진짜 나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내 친구들의 연락처를 모두 알고 있고, 중요한 정보와 먼 과거의 추억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공인인증서와 백신 접종 이력도 가지고 있다. 정작 나는 친구들의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고, 작년 이맘때 무엇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일상의 많은 부분을 휴대전화에 의지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휴대전화에는 인격이 없다. (부디 없기를 바란다) 나의 휴대전화는 그저 하나의 사물로서 방치된 세계에 남겨졌을 뿐이었다..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휴대전화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다른 이들의 SNS를 염탐했을 텐데,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계절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낙엽들이 바람에 휩쓸려 쓸쓸히 퇴장하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은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한 줌의 햇살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울하고 스산한 오후의 풍경이었다. 커피잔과 함께 한 컷 찍어 ‘가을의_쓸쓸한_뒷모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올리고 싶어졌다. 그러면 ‘좋아요’를 몇 개나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다가 휴대전화의 부재를 다시 깨달았다. 늘 좋은 풍경은 휴대전화에 먼저 양보했었지. 나는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을 뿐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없으니 생생한 풍경이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헤르만 헤세 저, 을유문화사, 2015)이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가 보고 느낀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과연 온 마음을 기울여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했다. 지금의 짧은 인상들이 어떤 그림의 한 조각일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사랑한 순간들이 이루어 낼 아름다운 풍경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일 뿐.
영 맥을 못 추던 태양이 간간이 구름을 비집고 나와 주변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 풍경이, 그 소리가 내면 깊숙이 침투하며 별안간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복잡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건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
문득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각에 맞춰 놓은 휴대전화 알람이 떠올랐다. 이동시간을 계산하면 아마 그 알람은 빈자리에서 공허하게 울리게 될 것이다. ‘알람을 꺼달라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속으로 조금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휴대전화의 유무를 확인했다. 역시 책상 위에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덕분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드디어 방심한 세계와 방치된 세계가 만났다. 나와 휴대전화, 우리 둘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관계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