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진로를 선택한 이유.

by 조효진


어린 시절의 나는 눈이 반짝이는, 하고 싶은 것 만 많은 학생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어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운동에 빠져 경호원을 다짐했으며 뮤지컬 배우의 꿈도 야심 차게 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꿈에는 ‘금전적 지원을 해줘야 할 수 있지, 비전이 없는 직업이야, 내 성격과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져.’ 여러 가지 핑계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로 인해 빛은 점차 사라졌고, 비로소 깨달았다.


'아아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는 건 웬만한 열정으로 할 수 없구나.'


푸릇하던 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던 어느 날, 하고 싶은 것 만 찾던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기로 한다.


마음속 어지러움이 잠잠해질 즈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여고생들의 2009년은 틈이 없는 빽빽한 앞머리와 삼지창 앞머리의 시대였다. 자주 다듬어야 했기에 잘 자르는 우리 반 친구는 소중했고, 그게 바로 나였다. 헤어스타일에 유난히 예민했던 터라 혼자 거울 앞에 앉아 때때로 만져보았던 머리였을 뿐인데, 특별해진 것이다. 한 명, 두 명 나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갈수록 내 실력도 향상되었다.


'나는 머리 만지는 걸 좋아하고, 헤어스타일에 예민하지.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사회에 빨리 나가서 돈도 벌 수 있고...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사라진 빛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꿈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걸 찾으니 한편으로는 씁쓸했지만, 나름의 반짝임이 있었다.


그렇게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진로를 찾고 나니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과 상의 후 비교적 낮은 금액과 빠른 자격증 취득을 보장한다는 아카데미로 재빠르게 발을 내디뎠다.


딩동댕동-


학교가 끝날 때면 친구들은 야간 자율 학습을 준비하고, 나는 지하철로 향했다.

'공부, 운동, 피아노 학원은 다녀봤지만 미용 학원 이라니!'

그저 지나가는 정거장 중 하나였다면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그곳은, 인생의 도착지를 향해 꼭 거쳐야만 하는 경유지였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한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책상마다 무섭게 달려있는 마네킹 얼굴이 가장 처음 보였다. 그 뒤로는 또래부터 중년의 나이까지 열댓 명의 수강생이 그들의 일을 하고 있었다. 마네킹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고, 수강생들의 얼굴엔 희로애락이 공존했다. 공간이 눈에 익어갈 즈음에 시큼하고 인위적인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파마약도 염색약도 아니었다. 마네킹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풍겨오는 냄새였다.


지금도 그 공간을 생각하면 코가 시큼하다. 사실 그곳 만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 가고, 인턴이 되고,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까지 끊임없이 따라왔다. 그건 물에 젖고 마르고를 반복하는 부단한 연습의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