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발악.
나는 쭈뼛쭈뼛 이란 말이 어울리는 수강생이었다. 질문이 있을 때면 한참 동안 속으로 정리하고 손을 찔끔 들어 존재를 알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원에서는 마네킹과 나 온전히 둘만의 시간이 많았다. 표정이 없던 마네킹의 명칭은 '민두'였다. 민두, 가발이 붙어있지 않은 민머리의 두상. 무표정인 그녀에게 '효지니'라는 이름을 만들어 크게 적어주었다. 각자의 민두를 구별하기 위함이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첫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뭐가 다른 거지?'
파마 와인딩* 연습이 한창 일 때 내 친구 효지니는 같이 웃어주고 울어줄 뿐, 피드백을 주진 못했다. 직접적으로 대화할 친구가 필요했다. 미용에 편견을 갖고 싶진 않았지만, 학원 또래 아이들에게는 학교 친구들과 사뭇 다른 위화감이 있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나는 친해지기 위한 작전을 세우기로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개성이 넘쳤고, 그들에겐 메이크업으로 인한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항상 조용한 듯 어울림에 거리낌 없는 저 노란 머리 수강생도 인상이 강렬했다. 나도 마냥 흐릿하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엄마의 화장대 위, 초록색 메이크업 베이스와 니베아 체리 립밤을 바르곤 했는데... 아쉽게도 허여멀건한 얼굴과 반짝이는 입술은 요점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대를 살폈지만 눈이 시리다던 엄마에게 아이라이너가 있을 리 없었다. 목표를 위한 투자가 필요했다.
다음 날 하교 후, 역에 딸린 화장품가게에 들어가 브라운 컬러의 펜슬 아이라이너 하나를 구매했다. 곧장 지하철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 손거울을 꺼냈다. 윗꺼풀은 속눈썹 때문에 그리기가 쉽지 않아 비교적 쉬운 눈 밑을 슥슥 칠하니, 작은 거울 안에 비치는 모습이 꽤나 강렬했다. 표정에서 마저 자신감을 내뿜고 있었다.
"저기,, 제 가발 좀 봐줄 수 있으세요? 뭔가 이상한데 잘 모르겠어요."
"아아 브로킹*이 잘못됐어요. 처음에 브로킹 탈 때부터 간격 잘 맞춰야 돼요."
"와! 감사합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열여덟 살이에요."
"저는 열아홉 살이에요."
"앗, 언니셨구나 말 편하게 해주세요.. 하하"
작전은 성공이었다. 또렷해진 나는, 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신기하게도 소속감이 밀려왔다. 옆자리에 앉은 노란 머리 언니와의 대화도 척척 이어나갈 수 있었다. 6000원의 물건이 내게 값진 무기로 장착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라인을 그린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어쩌면 같은 의미로. 하하'
파마 와인딩: 모발이 롯드*에 말리게 되는 것.
롯드 :파마할 때 사용하는 막대모양의 도구.
브로킹: 한 구획을 만드는 것. 커트나, 펌을 하기 쉽도록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