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나는 오래전에 풀려 저만치 구석에 떨어져 있는 나사같이 살았다. 더 이상 필요도 없고 누구도 찾지 않는 녹슨 나사. 그리고 여전히 잘 돌아가는 세상.
내 또래의 아이들은 수능을 앞두고 있던 시기, 나는 몇 년간 스스로 잠가두었던, 보이지 않는 현관문의 빗장을 열고 서울로 향했다. 난 가족들에게 질릴 대로 질려있었고 언제든 기회만 있다면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제 성인도 됐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던 거다. 그동안 틈틈이 모아두었던 돈 백만 원가량을 챙겨서 노량진으로 떠났다. 왜 노량진이냐고? 열아홉의 나에게 그곳은 젊음과 생기 넘치는, 그리고 보통과 보편의 길을 걷는 그 나이 때의 인간이 머무는 곳이었으니까. 난 튕겨져 나온 녹슨 나사였지만 한 번쯤 그들과 같은 류의 사람인 것처럼 굴고 싶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머물러 하루를 보낼 곳이 재수학원이나 독서실이 아닌 그 옆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피시방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에 있으면 난 그들과 같은 노량진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실테고, 우리의 꿈이나 가는 방향이 다르다고 해도 난 그걸로 족히 만족할 터였다. 포기는 수없이 많이 해봤고 세상을 겉도는 일도 내 특기였으니까.
잠은 여성전용 고시원에서 잤다. 한 달에 24만 원이었고, 외창은 당연히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 주방 등은 공용이었다. 방음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무엇보다 침대에 누워 다리를 뻗을 수 없을 정도로 방이 작았다. 두 다리는 침대옆의 책상 위에 올려야 잘 수 있었다. 그러려면 몸이 일자가 아니라 비스듬해진다. 당연히 숙면을 취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엄마, 아빠와 집을 벗어나 내 한 몸 뉘일 곳이 서울 땅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감사했다.
아르바이트 준비하는 시간이 학원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샤워실을 많이 사용하는 때가 아니라 고요하게 혼자 아침 샤워를 할 수 있었지만, 아마도 온수 나오는 시간이 아니었는지 늘 냉기도는 물로 씻어야 했다. 그래도 붐비지 않는 샤워실에서 뒤에 기다리는 사람에게 쫓기지 않고 샤워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나는 좋았다.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7시간을 카운터와 가게 전반의 일을 맡아 혼자 가게를 보는 것이었다. 간단히 청소를 하고 손님이 오면 시간을 일지에 수기로 기록한 후, 과자나 음료수를 사려는 손님이 있으면 이것 역시 일지에 기록, 판매한다. 손님이 컴퓨터 사용을 끝내고 가게를 나설 때 한 번에 계산하는 구조였다. 또, 지금이야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이 식당 못지않게 음식 조리를 많이 한다지만 그 당시에는 음식 조리랄 것도 없이 봉지라면을 끓여서 단무지 몇 조각과 내는 게 끝이었다. 메뉴엔 오로지 라면 하나뿐이었던 거다. 퇴근 전 라면 냄비와 그릇을 설거지하고 내가 일한 시간 동안의 매출을 기록하고 사장님과 교대할 시간을 기다리면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그 작은 피시방은 내 것 같았다. 대한민국 서울땅, 노량진의 한 가게에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이 꿈결같이 느껴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하거나 원대한 꿈이 없었다. 소방관, 경찰관… 이것저것 돼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말이다. 언니들은 교수며 의사, 기자, 검사 등등의 꿈을 거쳐 갈 때 나는 혼자 슈퍼 주인이나 떡볶이 집 사장을 꿈꿨는데, 유독 꿈속에서 슈퍼 주인일 때가 많았다. 아마도 풍족하게 간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집 형편상, 엄마는 장을 보러 가면 가끔 과자를 사다 주셨다. 과자는 같은 걸로 딱 세 개, 나와 언니들에게 앞앞이 딱 하나씩이었다. 언니들은 과자를 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먹었지만, 나는 늘 언니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혼자 승자가 된 것 마냥 여유롭게 먹곤 했다. 잔뜩 진열된 주전부리를 보고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어린 시절 꿈속. 아쉽게도 늘 과자 봉지를 뜯기 전에 깨버리고 말았지만, 슈퍼 주인이 되는 꿈은 늘 날 행복하게 했다.
어렸을 때의 그 꿈 때문이었을까. 나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나서 틈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첫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논현동의 한 편의점이었는데,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근무하는 일이었다. 첫 근무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을 느릿느릿 걷던 나에게 문득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굳게 다문 입술들. 빠르게 계속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대비되는 나의 느릿한 걸음. 치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틈사이에 나만 혼자 이방인처럼 외떨어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내 안에 확 퍼지며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자유다!'
사람들의 인생 방향과는 다르지만 나만의 방식과 길대로 걸어가는 그때가, 난 너무나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할 테지만 나는 지금 내가 걷는 곳도 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난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우주 먼지가 돼버리면 그만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