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 천사 Sep 21. 2023

인연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떠나가고 있다.

"우리 친구 할까요?"

농구선수인가 싶은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남자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던진 말이다

눈인사를 나눈 것뿐인데?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망설임 없는 표정이었다.

한 여름밤이었던 탓일까.

 훅! 던지는

짤막한 그의 말 한마디에

마음까지 땀방울이 맺혔다.

친구들과 장난처럼 이어진

일회성 만남이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친구?

첨 본 남자가 던진 그 말은

모호하면서도 황당한

관계의 대명사로 들렸다.

생략한다면

그는 첫눈에 반했다는 말 대신

친구 하자고 한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만나도 탈 없는 사이라는

연막을 친 셈이었다.

친구야 하다가 자기야 하더니

여보야로 부르기 위한

그만의 인연 맺기 방식이었던 것이다.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된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나오고 보니

엄마와 아빠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인연으로 붙여지는 대명사는

독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친구, 애인, 부부, 가족 등

공들인 시간만큼 인연의 이름이 다르듯

의미의 가치도 달라진다.


 부부는

생의 길목에서 스치듯 만난  

한 송이 꽃과 나비일 것이다.

한 순간 바라보다 돌아서면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리는

인연으로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잠시 잠깐

마주쳤던 꽃이 궁금해지면서

이름을 불러보다가 다시

보고 싶어 지면서

운명의 수레바퀴에 감기면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덱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장미처럼.

부부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유일한 존재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정원을 꾸미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특별한 관계가  되기 위한 것이다.


부부로

사는 동안 알게 된다.

스치는 인연이라는 것을.

그의 마음이 변질되었다고

분노하면서 부부사이에 자리한

허망한 공간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여백인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모를 수 있는 생의 여백 같은 것.

부부사이는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가 되어야

지속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라고 할까.


살면서 배우게 된다.

친구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가족도 떠나갈 존재라는 것을.

각자의 삶 속으로 또는 죽음

상흔으로 남기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다.

다섯 손가락이 붙어 있다면 제 할 일을

못하듯이 부부도 일정한

공백이 있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모든 인연은 살아가는 동안

스토리를 남기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부부사이가 멀어질 때마다

보고 싶어서 달려가던

연애시절이 그리워지듯이.

추억 속으로 들어간 관계는

추억이란 이름만으로도 정화된다.


부부로 사는 동안

부딪히는 갈등도

장미를 어루만지다 가시에

찔리는 아픔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남편과 아내로 살아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혈연관계도 타인에 불과했던

남자와 여자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처럼 부부 인연은

하늘로부터 시작되어 지상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게 하는

거룩한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부는 소중한

책임을 묻는 인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바람결에 흔들리다

떨어진다면

부부 사이의 공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권태와 우울증으로 인해

꽃지는 봄날의 슬픔으로

살아갈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꽃 진 자리에

맺힐 열매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비어내는 자리에 들어서는

또 하나의 채움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떤 날은

부부 사이가 돌아 서면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작은 이별 중의 하나로

바라보는 너그러움으로 견뎌야 한다.

마음속에서 안녕으로 손 흔드는

작은 이별들.

어떤 이유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신뢰감 앞에서.

또 어떤 이유로 부부도 남이라는

쓸쓸함을 맞이하면서.

원하지 않았지만

한 때 사랑했다는 씁쓸함만으로

살아야 하는 허무감 속에서.

결혼으로 설레던 심장이

통증에 시달릴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도

살아가면서 진행되는 이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우리의 생이 그렇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로 인해 지금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눈물겨워지는 순간이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선

남편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 버렸다는 지인의 부고를

받는 날처럼.

세월을 노 저어 가는 동안

마주했던 인연이 두고 간

사랑도, 미움도 소중한

선물이었노라 어루만지게 된다.


부부는

서로를 붙잡고 사는 것 같아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서로가 떠나는 시간을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신혼시절을 돌아보면

다투는 것이 사랑이었구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날 만큼 싸울 일도

아니었다.

부부가 아니었다면 쉽게

지워질 상처도 부부라서

더 오래 쓰라렸다.

잠 못 이루게 했던

갈등도 부부가 아니라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고

인연이 아니다 싶으면 싹둑

자르면 된다.

하지만 쇼윈도 부부가 되든

그림자로 살든 부부는

쉽게 떠나질 못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떠나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다린 것도 아닌데

가을이

오고 있다.

아침이 시작될 때마다

나뭇잎이 생각보다 가볍게

가지에서 떠나고 있다.

그와 나의 인연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곁에 있다고

영원히 묶여 있을 것이라는

답답함에 서둘러 이혼을

고집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나무들이

홀로 추워지는 계절을

맞이하듯이.


부부도

지나가는 인연으로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생의 가을이다.

어차피 떠나는 사이라면

부부라서 집착했던 이유들을

낙엽이라며 놓고 싶어 진다.

다시 시작될 봄날

파릇이 솟아날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인연은 인사도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사진출처: 네이브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편하게 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