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마주하는 모습은
대부분 그 상황 그리고 사람의 단면적인 모습이다.
내가 타인을 단면적으로 이해하고 단정지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은 편하겠지만,
결국 나조차도 세상을 좁게 보는,
미운 털 박힌 오리가 되어 있는 나를 마주한다.
심지어 그것도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나의 영화 안에서.
내가 나를 단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면,
타인과 상황 역시 단면적으로 보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은
결국 내가 가진 시각으로 해석된다.
나의 시각이 좁아질수록
사람도, 상황도 모든게 쉽게 왜곡된다.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거나
괜히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그 사람에게보다 나 자신이 더 흔들리고, 더 화가 난다.
내가 그 상황과 사람을
좁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나의 모자람과
그 순간 함께 흔들리며
나의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동시에, 가장 최악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상황에 대해 깊이와 입체를 이해하려면
결국 나 안에 있는 다양한 얼굴들을
먼저 수용하고, 인정하고, 토닥여줘야 한다.
점점 더 그래서 의심이 올라오거나
마음이 거칠어질 때면
나는 이렇게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얼마나 입체적으로 이 순간을 보고, 보려고 하고 있는가.’
제 3자의 시각으로 객관화적인 질문 앞에서
내가 아직 충분히 넓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시작된다.
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 중 하나는
나를 다 이해해주고, 알고있다는 태도가 아니다.
달콤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분들과는 종종 현실과 어긋난 지점이 많았다.
나의 다양한 면을 봐주려고 하고, 그 사람이 가진 진실성과 일관된 태도다.
나또한 그렇게 관계를 맞이할 때, 후회가 적다.
뭐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의 생각과 행동이기에_
나는 상황과 관계에 있어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다양한 결을 가지고,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
자연스럽게 내 삶과 함께 호흡하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나만의 입체적인 면들을
알아가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자존감은, 바로 그 태도에서부터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