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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Jun 05. 2024

라면을 먹다가

입천장을 잘 데는 나와 세상의 양면성

나는 입천장을 잘 데이는 편이다. 허겁지겁 빨리 먹으려는 성급함 때문이다. 6년 전, 선배 형이 "기다려 보라" 말했을 때 고깃집을 놓쳤던 것도, 제주도에서 야심 차게 오픈했던 식당이 상권 분석도 없이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망했던 것도, 모두 내 성급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성급함 때문에 수많은 피해를 보는 나지만, 그 덕분에 내가 운영했던 식당의 건물주는 6년 동안 안정적으로 임대 수익을 얻었고, 직원들은 장사가 잘 되는지와 크게 상관없이 조금은 편안하게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라면을 먹을 때마저 성급해서 국물에 입천장을 데는 나지만,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덕을 베푸는 셈이니, 공동체적으로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쓸모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온 인류를 발전시킨다고 했던가?

이처럼 나의 성급함은 삶의 곳곳에서 양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특성이 한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큰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성급함으로 인한 나의  실수들은 나 자신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들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사실 성급함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며, 매 순간이 중요한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귀중한 자원이다. 또한, 기존의 불합리한 관습을 개선할 때에도 성급함은 큰 도움이 된다. 불합리에 분노하는 끓는점이 낮아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시도하는 성격 덕분에 많은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급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열정과 빠른 행동력은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성급함의 이면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손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는 성급한 결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왜일까? 아마도 성급함은 새로운 것을 향한 긍정적인 에너지이지만, 한번 성급함이 발동한 후 손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는 나의 경우 성급함 대신 똥고집과 우직함이라는 다른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세상의 양면성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까? 아마도 그 해답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특성이나 상황이 어떤 면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면에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삶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급함이라는 나의 특성이 가져다준 다양한 결과들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양면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성급함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예측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씨앗을 퍼뜨리듯이, 나의 성급함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말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함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고,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완벽함 속에서는 배움이 더디고, 창의성은 가두어지기 마련이다. 반면, 나의 성급함은 틀을 깨고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나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성급함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한 형태이며, 새로운 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성급함이든, 신중함이든, 그것은 우리의 일부이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세상의 모든 입천장 잘 데이는 사람들이여,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말자. 당신들은 비자발적 덕 베풂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니까! 물론 나 역시 지금까지 비자발적 덕 베풂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라면을 먹을 때 후후 두 번 정도는 불고서 먹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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