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를 꺾다가
제주의 봄, 고사리 장마가 전하는 인생 이야기
아래글은 작년 4월 말에 쓴 초고를 수정하여 지금 올린 것입니다.
며칠째 제주에 비가 내리고 있다. 사월에 이렇게 잦은 비를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지역 주민들에게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시기, 나에게도 고사리를 팔아 용돈을 벌고 내 식당에 쓸 반찬 재료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4월 초, 봄비가 그치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쬘 때면 제주도민들은 어김없이 첫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산으로 향한다.
고사리는 크게 흑고사리와 백고사리로 나뉜다. ‘먹고사리’라고도 불리는 흑고사리는 줄기가 갈색이나 진한 초록색을 띠며 길고 통통하다. 궁중 진상품으로 유명한 ‘궐채’가 바로 이 먹고사리를 말한다. 반면 백고사리는 연두색에 줄기가 가늘고 짧다. 흑고사리보다 햇볕을 많이 받고 자란다 하여 ‘볕고사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산에서 만나는 첫 고사리는 햇살을 머금은 듯 싱그럽고 빛깔이 선명하다. 갓 올라온 고사리는 갈색이나 진한 초록빛을 띠며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듯 영롱한 느낌마저 든다. 잎을 펼치기 전, 꽉 찬 통통함을 보면 왜 아기 손을 고사리손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귀엽고 매력적이다. 촉촉한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내음 속에서 고사리를 찾아내어 딱 소리 나게 꺾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마치 보물 찾기와도 같다. 물론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사리를 따려는 사람은 많고 좋은 고사리가 나는 곳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사리 명당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경험과 지식을 쌓아 고사리 명당들을 점차 알게 되었고, 가시덤불 속에 숨어 있는 통통하고 좋은 고사리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고사리를 채취하며 깨달은 것은 단순히 맛있는 식재료를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고사리는 마치 인생과도 같다. 경쟁자도 없이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고사리는 줄기도 얇고 키도 작으며 잎을 빨리 틔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자란 고사리는 잎을 펼치는 시기를 늦추고 더 크고 통통하게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고사리의 성장 과정을 보며 인생의 성공 또한 빠르게 결과를 얻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 고사리를 채취할 때는 삼발이라고 불리는, 가지가 세 갈래로 분화된 고사리도 채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잎을 펼친 고사리는 맛은 물론이고 시장 가치도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인생에서 너무 빨리 결과를 얻으려 조급해하다 보면, 오히려 깊이 있는 성장을 놓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사리의 성장 패턴을 관찰하면서 고사리와 인간의 본성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사리가 경쟁 상황에서 더 크고 통통하게 자라는 것처럼, 인간도 종종 자신을 발전시키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경쟁 성향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도록 유도한다. 나 또한 식당을 운영하며 지역 내 다른 식당들과의 경쟁 속에서 신선한 현지 식재료를 사용한 독특한 요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동기를 얻는다. 물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치고 깨져 2024년 3월, 결국 식당 문을 닫았지만 말이다. (항상 많이 안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란 걸)
"왜 나만 이렇게 잘 안 풀리는 걸까? 왜 하필 내가 하는 일마다 레드오션인 걸까? 끊임없이 새로 문을 여는 식당 주인들은 90%가 망한다는 이 자영업 시장에서 자신만은 다를 거라고 확신하는 바보들일까? 나는 뭘 해도 안 될 거야…."
좌절과 자책,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기 전에, 제주의 봄비가 만들어내는 고사리 장마는 잠시 멈춰 서서 세상의 이치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고사리의 삶은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제주의 봄비가 만들어내는 고사리 장마는 단순한 자연 현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성장과 성공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사리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삶의 밭을 일구고 희망의 씨앗을 심을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