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푸른 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그런 날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2년 동안 제주에 갈 때면 아침마다 바다로 나갔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나섰지만,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엄한 일출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늘은 맑디맑았지만, 바다 위로는 늘 얄궂게도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면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이 푸른데, 유독 바다 위로만 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카메라를 내려놓을까 했지만, '구름 위로 떠오르는 해라도 찍자'라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마침내 바다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 기대했던 애국가의 일출처럼 웅장한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리산 천왕봉에서 마주했던 일출이 떠올랐다. 천왕봉의 태양은 신령스러웠던 안개를 뚫고 구름을 몰아내며 모든 것을 드러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세상을 아름다운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던 그 모습이 더 인상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사진과 동영상은 분명 멋졌지만, 목표를 달성한 후의 기분은 예상과 달리 공허했다. '겨우 이걸 위해 2년간 새벽마다 나왔던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차분히 앉아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하나씩 넘겨 보는 순간 깨달았다. 실패했던 사진 속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은 존재했다. 폭풍우가 칠 것 같은 하늘, 몽환적인 안개,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 그 모든 순간들이 나의 추억으로 간직되어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가장 소중했던 순간은 완벽한 사진을 찍은 순간이 아니었다. 2년 동안 일출을 담기 위해 나섰던 그 모든 순간들이었다. 처음엔 실패라 생각했던 사진들도 사실은 다양한 구름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부푼 설렘과 지루함, 서서히 날이 밝아올 때의 기대, 그리고 예상과 다른 결과에 대한 실망까지, 그 모든 감정들이 모두 나의 도전의 소중한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얻은 건 완벽한 일출 사진 한 장만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새벽을 지새우며 노력했던 나 자신 스스로의 값진 경험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완벽한' 순간은 현실에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완벽하지 않음' 속에서 발견하는 예상치 못한 성취들은 우리가 삶에서 얻는 또 다른 가치, 기쁨 혹은 의미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오직 목적지만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 여정 자체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이 고단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노력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제 목적지가 어디가 되던지 조금 더 여유롭게 여정에도 더 집중해보려 한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찾게 될 예상치 못했던 어떤 가치를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새벽을 깨우게 된다면, 그때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정 자체가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