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가 Jun 29. 2024

님아 그 돌을 건너지 마오

욕망 그 뒤를 조용히 따라오는 위험에 대하여

제주도 서귀포 남쪽의 웅장한 자연경관과 한적함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기암괴석과 빼어난 경치에 자주 발걸음을 멈추곤 했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아찔한 절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하얀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딪혀 거품으로 부서지는 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이름 모를 작은 섬들의 조화는 감탄을 자아냈다.

안전 구역에서 한참 동안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문득 '위험 추락주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더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리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더 좋은 사진, 더 멋진 풍경을 향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두세 번 뛰어올라 가장 전망 좋은 바위에 섰다.

"역시 오길 잘했어!"

나는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풍경에 취했다. 하지만 잠시 후, 돌아서려는 순간 몸이 기우뚱하며 심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높은 바위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니 그 풍경은 전혀 달랐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파트 3층 높이가 밑에서 보면 별로 높아 보이지 않지만 올라가서 밑을 보면 높아 보이고 무서운 감정이 드는 것처럼, 갑자기 높이가 실감 나며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리가 흔들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순간 공포가 엄습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당황하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침착하려 애썼다. 어릴 적 읽었던 만화책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절벽이 아닌 숲길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엉금엉금 네 발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거친 바위의 감촉이 손바닥에 생생하게 느껴졌고, 바람 소리마저 위협적으로 들렸다.

마침내 지정된 관람장소에 다다랐을 때,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큰 부상 없이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좋은 경치를 향한 욕심이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의 경험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나를,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삶이 마라톤이라면, 중요한 것은 결승선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다. 1등도 좋지만, 눈앞의 유혹에 흔들려 무리하게 달리다 넘어지는 것보다는 정해진 길을 묵묵히, 그리고 안전하게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자신이 안전하게 달린다 해도 예상치 못한 위험이 닥칠 수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침착하게 현명한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안내판'들이 존재한다. 법, 규범, 전통, 타인의 기대 등. 이들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동시에 때로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때로는 과감하게 기존의 규범을 깨야만 새로운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이들처럼 혁신을 이루지는 못한다. 나처럼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만 할 뿐)

나는 그날의 경험 속에서 안전의 중요성과 더불어 진정한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주어진 안내판을 존중하며 따르되, 항상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때로는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전을 중요시하되 도전정신도 잃지 않으며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제주의 절벽을 빠져나와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앞으로 내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제주의 기억들은 잊혀 가는 용기를 일깨워주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제주를 찾을 때, 나는 절벽 아래가 아닌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