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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Jun 27. 2024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다가

인생의 적정거리 잘 유지하고 있는 걸까?

아래글은 올해 3월 말에 써놓은 글을 조금 수정한 후 올린 글입니다.  

아침 햇살이 눈꺼풀을 간질이는 듯싶더니 이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 따가움은 이미 기상 시간이 지났음을 깨우쳐주기에 충분했다. 지각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 여기는 나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뛰쳐나와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옷을 걸쳐 입었다. 젖은 머리를 급하게 말리려는데, 조급한 마음에 헤어드라이어를 너무 가까이 대고 말았다.

"텅!"

드라이어 앞부분이 머리카락과 부딪히며 책상 밑으로 떨어져 나갔다. 허리를 구부려 떨어진 부품을 찾아 다시 끼우는 동안,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오늘은 결국 늦겠구나.'

아침의 혼란으로 인해 아침을 먹을 시간도 잊은 채 회사에 가까스로 도착했고, 배고픔을 참고 있던 나는 회사 트럭에서 빵 한 조각을 발견했다.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둥 마는 둥 빵을 먹어치웠지만, 나중에야 그 빵의 유통기한이 2월 22일까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라비아 숫자 2와 3의 모양이 비슷한 탓에 3월 22일로 잘못 보았던 것이다.

참으로 짜증스러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건, 즉 헤어드라이어 사고와 유통기한 오판 사건은 뜻밖에도 내게 '적정 거리'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헤어드라이어 사고는 내가 머리를 빨리 말리고 싶은 욕심에 안전거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유통기한을 잘못 본 것 역시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조급함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다. 나는 문득 이러한 나의 조급함이 단순한 실수를 넘어 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혹시 내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마치 머리를 말릴 때처럼 언제나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때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친구의 고민을 상담해 줄 때도, 처음엔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위로해 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의 고민은 끝없이 반복되고, 우리는 지쳐간다. "또 그 이야기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한 번 두 번 꾹 참는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던진 냉소적인 말 한마디에 친구와의 우정은 금이 가 버리곤 한다.

반대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소중한 인연을 놓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늘 곁에 있던 친한 회사 동료가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랜만의 나의 전화에도 조금은 미지근한 반응의 동료, 나는 그 동료의 변화를 보고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 동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왠지 불안하고 망설여진다. 그 결과, 그 동료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가고, 결국 서로의 삶에서 사라져 버린다.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우리는 종종 내가 얼마나 가까이 서야 하는지, 얼마나 멀리 서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내 삶과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아직도 헤어드라이어 앞부분을 머리에 부딪쳐 떨어뜨리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면 '아, 또!'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떨어진 부품을 주워 다시 끼운다. 처음엔 단순히 짜증만 냈지만, 이제는 '아! 내가 또다시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구나' 하고 되뇐다. 마치 삶이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잠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는 건 어때?"

헤어드라이어 앞부분처럼 내 삶의 부분들이 갑자기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나를 되돌아보려 한다. 내가 인생의 여러 영역에서, 나의 교우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일과 휴식 등 그 양 끝단의 중간 어디쯤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가까워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너무 멀어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혹은 나 자신을 너무 다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떨어진 드라이어 앞부분을 다시 끼우듯,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춰보려 노력한다. 때로는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넓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배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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