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투를 팔려다가
깜투와의 이별 그리고 나의 우유부단함과 도덕성
오늘은 기억에 남을 만한 하루였다.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나는 종종 방향을 잃고 헤매는 작은 나룻배처럼 느껴진다. 그 나룻배의 주인은 때로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그 결과 나룻배는 육지와 점점 멀어져 간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과도한 자만심 때문인 듯하다. 대한민국의 전산 시스템이 내가 불리한 쪽으로는 얼마나 고도화되어 있는지를 실감할 때, 그런 나의 자만함이 더욱 어리석게 느껴진다.
깜빡하고 있었다. 나와 지난 30만 킬로미터를 함께 달려온 검은색 투싼, ‘깜투.’ 그 차를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기 트럭인 포터 EV를 구입한 지 2년이 지나도록 깜투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연간 60만 원의 보험료라는 묵직한 부담을 안고 있었음에도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2023년, 올해의 자동차 검사를 앞두고 나는 그저 깜투가 검사만 잘 통과하길 바랐다. 하지만 깜투는 경유차 특유의 고장, 머플러 부식으로 인한 유해가스 유출로 인해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깜투 역시 모든 힘을 다한 후 실망 혹은 낙담한 듯, 수리 완료 후 재검이라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어 변속까지 이상해지며 기어가 차를 세게 탁 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변속기를 수동으로 변경하고 기어를 3단에서 2단 또는 1단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기어는 변경되지 않았다. 이 현상은 시동을 껐다 켜자 정상 작동되었지만, 고장 난 머플러로 인해 유해가스가 트렁크를 거쳐 실내에까지 유입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어 변속까지 문제를 일으키자 깜투를 팔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깜투도 제주도에서 운행하고 있지만, 깜투의 등록지는 용인시이다. 그래서 용인시에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한 달 후에 결과 통지서를 받아보니 자동차 검사에서 불합격한 차량이라 깜투는 조기폐차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예전의 어떤 기억들이 그제야 내 머리속에 떠올랐다. 신청하는 경유차가 많기 때문에 조기폐차 지원금을 받으려면 주행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주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단지 깜투가 표선에서 제주 검사소까지 60킬로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단지 유해가스가 조금 새어 나오는 것 때문에 주행 가능하지 않은 차로 분류되어 버리다니 조금은 억울했다. 물론 환경을 생각해서 유해가스가 나오는 차를 운행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조기폐차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차는 가스도 새면 안 되고, 깜빡이도 한쪽이 나가면 안 되고, 유리창 모터도 고장 나면 안 되고, 통풍 시트도 없으면 안 되고... 물론 과도한 확대해석이고,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적정한 기준이 어디냐고 되묻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했으니 너는 그냥 탈락이다"는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금의 취지에 맞는 것은 무엇일까?
깜투는 이미 재검사 마감일에서 한 달이나 지나 벌금이 3만 원이며, 오늘부터는 하루에 2만 원씩 가산 벌금이 붙게 된다. 결국 실망감과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었고, 심정적으로는 받지 못한 지원금 150만 원에 대한 허탈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포터 EV트럭을 사서 깜투를 보내야 하지 않나 하고 고심했을 때, 추억이든 뭐든 이에 대한 애착을 떨쳐야 했다. 그러나 내 안에는 이중적인 감정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나 자신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깜투에 담긴 추억과 감정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적인 이중성이 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마지막에는 노후 차량 조기폐차 지원금 지원 대상 공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이러한 실수로 인해 지원금 신청이 거부되었고, 그로 인한 실망과 후회가 생겼다. 더구나, 내 차량의 하자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숨기려 했으며 시도가 성공했다면, 나의 윤리적 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것은 나의 행동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도덕적으로 부당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경험을 통해, 금전적인 이득보다도 도덕적 가치와 원칙을 반영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결정을 내릴 때 더 신중하게 생각하며,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겠다고 조금 다짐해 본다.
전기 트럭을 구매하면서, '깜투'를 팔지 않았던 그 결정에 대한 미련과 추억들이 내 마음을 깊이 울리게 했다. 깜투는 나와 함께 30만 킬로를 달려온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이런 관계는 단순히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미련과 추억이 현명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깜투와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차는 나의 삶에 특별한 색깔을 더해주고, 여행과 모험의 기억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전기 트럭을 구매하면서까지 두 대의 차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심정적으로 150만 원의 상실감을 안겨주었지만, 달리 생각한다면 귀중한 교훈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지원금 150만 원을 받기 위해, 나는 얼마든지 깜투의 하자를 숨기고 '주행 가능한 차'라는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면, 나는 아마 '내가 얼마나 영리한지'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나는 내 안의 어떤 핵심적인 부분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지켜나가고 싶은 '나만의 가치'이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돈을 벌고 싶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믿는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아무튼 깜투는 떠났고, 깜투와의 추억은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