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번째 생일이다.
빼도 박도 못하게 만 24세가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에 타인은 축하를 해주고, 나는 나를 돌아본다.
그래서 매년 느끼는 감정 또한 미묘하게 다르다.
인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알 수도 없지만 올해는 꽤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근 몇 주 나는 마른 뇌와 빈 마음으로 살았다.
평소 나는 내가 사는 이유와 의미를 찾고, 타인의 삶에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들을 분석하는 것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썼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꽤 힘든 감정기복과 불면으로 약의 용량과 종류를 늘리면서 나는 '무의미'를 느꼈다.
깨어있는 밤이 줄었지만 건망증이 생겼고, 감정기복이 사라졌지만 느끼는 감정의 수도 줄어든 것 같았다.
좋았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과거의 평온하던 때를 갈구하면서도, 이 무덤덤함이 익숙하지 않았다. 내 본성이 그런 건지, 약 때문인지 모르니까.
타인에게 주는 감정에도 생각이 덜어졌다. 가볍게 느끼는 것이 잦아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생일이 다가왔다. 작년까지 나는 생일에 큰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낳으신 날이니까 부모님을 축하하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가끔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내 삶에 의미를 찾거나, 힘들거나, 타인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괴로울 때도 그랬다. 그래서 생일날 내가 부각되는 것이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무엇보다도 나를 생각하는 날들 중 하루가 내 생일이 되니 느낌이 달랐다.
'나'의 태어남을 축하하고, 칭찬하고, 사느라 수고했다고 하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타인에게 받는 사랑도 더 크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구나, 나를 사랑해 주는구나,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구나 생각했다.
주는 것보다 받은 것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나는 누군가가 주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또는 더 크게 느꼈는가. 꼬고 꼬아 작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제는 받음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봐야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