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안녕하신가요.
더위로 끓어오르던 8월도 어느새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열대야는 역대 최장 기간이었다고 하죠. 그래서인가 저도 지새우던 밤이 길었던 듯합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무한.
그게 긴 밤 동안 제가 느끼던 것이었습니다.
‘무한’이라는 말은 여러 방면에서 쓰입니다. 좋게도, 나쁘게도 볼 수 있죠. 대개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집니다.
특히 '한계가 없다', '한계를 넘어서'라는 표현은 열정의 대체어로도 많이 쓰이는 듯해요.
하지만 오늘 저는 한계를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제게 한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생각이었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죠.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노력해보지 않고 오만에 빠져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포부만 가득했던 하루하루를 살다 행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 다가오는 경계선에서 당황한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신체적, 환경적, 사회적.. 여러 장애물이었죠. 나아가려 노력했지만, 결국 무한에도 끝은 있음을 느꼈습니다.
단지 한계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빙글빙글 도느라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또한 꼬여있기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임을. 내가 만든 발자국을 언젠가는 마주칠 것을. 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를 앎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닫습니다.
최대한 멀리 나아가보았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끝을 모르고 향해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좌절하고 일어나며 제가 배운 것들이 그 무엇보다도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주체적으로 살며, 더 이상은 제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요.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라는 시를 보면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눈부신 고립'입니다.
모순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쓰이나, 이만큼 한계를 잘 설명하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알 때, 그 끝에 도달해 나를 그 누구보다 제대로 이해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눈부신 고립을 마주하겠죠. 저도 언젠가 그런 넘어갈 수 없는 선 위에서 제 자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는 것.
그때까지 성장해 나갈 우리를 상상하며.
도전적인 9월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