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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Aug 31. 2023

if..시력을 잃게 된다.

나는 오늘의 어떤 모습을 눈에 담을까?

오래전 어느 순간부터 눈이 답답하다.

책을 보거나 일상 속 제품의 작은 글씨를 읽을 때 안경을 끼어도 글이 흩어진다걱정이 되었다.

남들 다 먹는다는 루테인을 장복하고 있다지만 그것이 눈에 띄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안인가 보다 싶지만 노안 +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매번 신경이 쓰인다.

사물을 가까이 혹은 멀리 띄워서 볼 때도 흩어진 글이 모아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 뿐 아니라 아침과 저녁도 다르다안경을 끼었는데도 눈은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나만이 느끼게 되는 불편과 답답함을 주고 있다.


1년쯤 전 이맘 때 눈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내눈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병원을 찾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백내장 검사도 했다.

눈 상태의 검사 결과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나의 불편은 검사 결과에 상관없이 연장되고 있었던 셈이다.


문득 눈이 가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못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나의 생각속에 들어온 적이 있다.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죽어야 하나죽는 건 쉬운 일일까?

그렇다고 가족에게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나하는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가끔 앞이 안보이는 사람은 어떻게 다닐까나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하며 눈을 감고 집안을 다녀본 적도 있었다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못살거야!, 어떻게 살겠어!’라고 말했다.

집안이야 내가 다아는 익숙한 공간이니 그렇다지만 잘 보다가 아무것도 볼 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도 그말에 격하게 공감했다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말일뿐이지 실제 나에게 그런 비극이 생긴다해도 나는 죽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눈을 감고 다시 집안을 거닐어 보았다.

가장 많이 서 있었던 주방 씽크대수돗물을 틀어보고 흐르는 물속에 손을 넣었다.

짧은 더듬거림으로 찾아낸 주방 수건으로 손을 닦고 씽크대 찬장을 열어 그릇을 만져 보았다.

손 끝의 더듬에 걸리는 접시들이 달그락 거린다.

가스불을 켜보았으나 일시적으로 가스 냄새만 코를 스칠 뿐 나는 불이 켜졌는지 불빛을 볼 수가 없다.

손을 가까이 대보다 정말 보이지 않으면 손을 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덕션은 괜찮을까온도의 오르내림의 숫자가 보이지 않는데...

냉장고 문을 여니 반찬 냄새와 함께 냉기가 확 다가온다.

어느칸에 뭐가 있는지 눈으로 정리해 둘 때는 눈으로 바로 꺼낼 수 있었지만

감은 눈으로는 만져야 겨우 알아낼 수 있다.

주방 수납 창고를 열었지만 높이 올려지고 깊이 들어가 있는 것은

이제 나와 관계가 없는 주방 용품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잘 사용하지 않는 용품들이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때는 더 멀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 더듬질로 식탁의자를 당겨서 앉았다눈을 떴다익숙치 않은 듯 일순간 어두웠다 밝아진다.


그렇다! 나의 삶이 누적된 나의 공간인지라 나의 손은 감각적으로 그것들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밖은 어떨까보이지 않으면 소리에 예민해지겠지.

빵빵 거리며 지나는 자동차 소리수다하며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는 서로 뒤섞여버려서

국적 불명의 소음이 되어 들려올 것이다.

지팡이에 의존하며 더듬더듬 길을 걷다 나는 주저앉아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자기 연민에 빠져버린 가엾은 눈 먼 사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지금여기로 다시 모아오니 베란다 창이 보인다.

TV와 소파가 마주하는 가운데 공간에서 우리 가족들이 보냈던 시간들이 보인다.

아이를 성장시킨 공간남편과 내가 아이의 성장만큼 함께 보내온 공간이 되는 우리집 거실.

가족사진에 눈이 멈췄다참 오래된 사진이다.

가족사진 새로 찍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거 찍을 시간도 갖지 못할만큼 바빴나보다.

아니 이 아니여서 다음으로 미루다 이제까지 그 가족사진으로 이거면 됐다라고 합리화하고 위안받으며 지나왔을것이다다시 또 다음을 생각하며 다음에는 꼭 찍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가족의 행복을 가득 담은 가족사진이 바라보는,

나의 삶을 증거해주는 우리집에서 나는 오늘도 감사합니다를 되뇌이며

나의 눈을 통해 보이는 오늘을 내 속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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