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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Nov 05. 2023

이태원

= '아비규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이태원이라 쓰고 ‘아비규환’이라고 읽는다.

나는 특별한 도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자리한 이곳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서울 사람들과 다르게 생긴 많은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내 품에서 우리나라 다문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얼굴 생김도 다르고 피부색도 제각각인 사람들의 모습들이 유난히 많은 걸 보면 맞는듯하다.

나는 늘 내 품에 들어온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들로 나도 피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거나하게 취기 오른 모습으로 웃고 떠들다가 어느 순간 폭력이 오가는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고,

사이좋게 데이트 나왔다가 사소한 다툼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는 남녀들도 있다.

꼴불견의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술을 이기지 못하고 전봇대나 구석진 담벼락을 부여잡고 토하는 사람들

혹은 구석진 곳이다 싶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밖에 없는 곳에서 비틀거리며 노상방뇨하는 사람들...

모두 열거하기에는 나도 숨차다. 하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껴안아 줄 수 있다.

나는 이태원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도 10월 말이면 핼러윈이라는 축제가 열리고

이곳 이태원은 그 축제의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토종이 아닌 수입 축제이긴 하나 젊은 청춘들에게는 밤을 불태울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행사인 듯했다.

그래서 나도 매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일상에서도 소소하지만 다사다난한 일들이 빈번했는데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몰리는 축제라 하면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10월 말, 서서히 해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될 즈음부터

‘경찰. POLICE’

라고 크게 적혀있는 노란 형광색 조끼들이 여기저기 다닌다.

빨간불 막대기를 들고 길가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런 통제에 젊은 청춘들은 노란 조끼들에 불만스러워했다.

‘야~야! 이쪽으로는 가지 말래. 저쪽 한 줄로만 가야 한데’,

‘에이! 짜증 나, 저쪽은 너무 둘러 가잖아!’,

‘지들이 뭔데, 짜바리 새끼들!!‘...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젊은이들의 불만들이 길바닥 사이사이로 박혔다.

분명 노란 조끼들이 그냥 그러는 것이 아닐 텐데도 사람들은 불만스러워했다.

젊은이들의 조심 때문인지 아니면 노란 조끼들 덕분인지, 둘 다인 지는 몰라도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평소와 다른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이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동안 왜 큰 문제없이 사람들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는지를... 


22년 10.29 이전과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22년의 10.29. 그날은 지난날 젊은이들이 '짜바리 떴다‘고 불만스러워했던

‘경찰. POLICE’ 의 노란 형광색 조끼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좁은 길이든 넓은 길이든 마구마구 밀쳐가며 가던 길을 후퇴 없이 밀고 들어갔다.

이미 길을 점령하고 있던 사람들, 지하철 역에서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무법천지. 내가 봐도 아슬아슬했다.

전진만 했지 일보후퇴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밀고 밀리는데도 누구 하나 말려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왜 안 가!’, ‘뒤에 밀려오는데 빨리 안 가, 새끼들아!’ ... 

양방향 사람들의 아우성은 하늘로 퍼지고 땅으로 묻히고 있었다.

발에서 한번 벗겨져 나간 신발은 영영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 때부터인가 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좀 와서 도와 달라고 울면서 전화기 너머에 애원했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신고를 하지만 노란 조끼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한 명이 밀려 넘어지니 또 한 명, 또 한 명... 인간층이 만들어진다.

무서움 속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1미리의 공간도 없는 그 속에서 여지없이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골목 벽 쪽에 있던 사람들은 벽을 타보지만 잘 올라가면 다행이고

중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압사당하고 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고 ‘아비규환’ 그 자체의 모습이 내 품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뒤늦게 ‘경찰. POLICE’라고 박힌 노란 조끼, 검은 조끼, 119라고 적힌 빨간 조끼들이 마구마구 왔지만 이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널브러짐. 대참사가 벌어진 뒤였다.

숨이 막혀 죽어버린 것이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숨을 쉬지 않는 이의 가슴을 반복적으로 누르며

숨을 불어넣어주려 발버둥 치지만 허사였다. 그대로 그 가슴에 엎어져 맥을 놓아버린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숨이 막혀 죽어버렸고 또 숨은 붙어있지만 숨이 막혀버렸던 것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보면 범인?은 노란 형광색 조끼였다. 그때는 왜 그 노란 조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까지 그 의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대참사가 벌어진 이후 지위가 높고 낮은 아주 많은 이들이 다녀갔지만,

그때 노란 조끼가 왜 없었는지 그 해답을 말해주고 가는 사람이 없다.


또 10월이다.

나는 2022년 전과 전혀 다른 23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참사 이후 매일 하얀 국화를 들고 혹은 들지 않고 내 품에 와서 울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도 팽목항 '등대'가 바람결에 전해왔다.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가다가 물속에서 숨을 못 쉬고 죽은 아이들이

‘우리가 왜 숨을 못 쉬고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찾아오는데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알 수가 없어서 말해주지 못해 미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노란색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아마 너도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이미 나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길 가다 숨을 못 쉬고 땅 위에서,

내 품에서 죽은 아이들이 ‘우리가 왜 숨을 못 쉬고 죽게 되었는지 알려달라’고 하는데

일 년이 지나는 동안 나도 아무 말을 못해주고 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니까.

숨이 막혀 죽은 이들의 얼굴을 하나도 모르니 어느 순간부터 나도 보라색만 보면 눈물이 난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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