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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Dec 05. 2023

운명

바뀐 그 운명이 진짜인데 출생이 잘 못된걸까?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식상하다.

실제도 간혹 존재하기는 하나 드라마나 영화 속 주제로 숱하게 다루어진 것이 출생의 비밀이니까.

물론 그 빈번함 만큼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것은 재미를 보장받기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출생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한다.

학창시절 읽은 출생의 비밀을 다룬 순정만화 탓인가? 아님 본성인가? 

너무나 식상한 그 식상한 출생이 담긴 이야기의 한 대목, 한 엄마의 시선.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카페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저만치 앉아있는 어린 숙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도 누군가를 기다린 듯 문이 열리는 쪽을 쳐다보고 있어 우린 눈이 마주쳤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아이, 그 아이가 만나고자 했던 아줌마라는 것을

우리는 카페의 한산함 덕분에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눈이 마주칠 때부터 나의 가슴은 방망이질로 어질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고 궁금했던 아이가 저 아이란 말인가.

긴 생머리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급진 의복은 아니었지만 단정한 그 아이의 모습.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많이 떨릴텐데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험은 잘 봤니?”, “네....” 나도 할 말을 잃고 한달도 더 지난 수능시험 근황을 물으며

시답잖은 주변 이야기로 나를 진정 시켰다.

함께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마셔도 괜찮은지 물으니 요즘은 학생들이 더 많이 마신다고 했다.

하긴 우리 미주도 커피가 금물인줄 알면서도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긴 하니까.

그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처음 만났기에 낯선 모습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남편을 닮은 얼굴형과 눈매.

간간히 미소지을 땐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문득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6개월 전인 듯 하다.

미주가 언제부터인가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1년 전 급격하게 나빠져

신장 이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나의 신장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중에

미주가 우리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주가 아픈 것도 내 몸이 부셔지는 일인데 미주가 내 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의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18년동안 애지중지, 허약한 딸이 불면 날아갈까 얼마나 애태우며 키웠는데 이제와서 내 딸이 아니라니.

강미주는 타인입니다. ‘99.9% 불일치’의 글자가 닳고 닳을 정도로 봤지만 그 글자 그대로였다.

넋을 놓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부터 살리고 보자는 남편의 조언으로

내 슬픔은 뒤로하고 미주에게 맞는 신장 공여자를 찾고 찾고 또 찾았다.

다행히 미주에게 잘 맞는 신장을 찾게 되었고 그 덕분에 미주는 다시 건강해졌다.

이제는 미뤄뒀던 내 슬픔에 귀기울일 차례가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미주가 내 딸이 아니라면 왜 우리 딸이 아닌지를 알아야 했다.

출생 병원에서 미주가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너무도 괴로웠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처음의 따뜻함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의 태도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었다.

그래서 더더욱 미주가 왜 우리의 딸이 아닌지를 밝혀내야 했고 밝혀내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미주가 태어나는 날 병원에서 함께 태어난 아이가 여럿 있었고,

어리숙한 간호사의 실수로 하필이면 내 아이가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간혹 아이가 바뀌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었고

드라마 주제로 출생의 비밀이 다뤄지는 경우는 종종 보긴 했으나

그런일이 나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미주를 키우며 남편과 나눴던 대화들을 회상해보면 이제사 이해되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다.

‘도대체 미주는 누굴 닮은 거야’, ‘하는 짓도 완전 다르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닮아 보이는 발가락이라도 찾아서 우리딸임을 증명시키고는 웃으며

지나왔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미주와 바뀌게 된 그 딸을 찾는 과정도 쉽진 않았다.

이사 간 곳마다 찾아다녀야 했고 중간에 끊어진 주소지는 처음부터 경로를 달리하며 찾아야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모희네 집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모희네 집의 변변치 않은 세간살이는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아파 누워있는 모희 아버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는 모희 엄마,

부모의 부재아닌 부재로 모희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모희 남동생.

가슴 저 밑바닥부터 솟구쳐 흐르는 눈물이 났다.

모희 부모를 만나고, 만나서 지난 과정을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일들 또한 쉽지 않았지만 나는 해야했다.

또다른 내 딸 모희를 만나야 했으니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은 미주와 모희에게 알리고 그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어려웠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같은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기에 더 어려웠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미뤄두기도 했지만, 미주가 건강을 회복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더 오래 묻어두기 어려워서 미주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게 된 것이었다.

미주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이해를 하지만 처음엔 거의 난동 수준이었다.

참으로 나의 마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다.

이런 내가 부모 자격이 있나 의심하리만치 나는 부모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생각까지 가기도 한 것이었다.

너무 어려운 환경의 모희를 보며 미주가 누렸던 그 모든 것이 모희가 가졌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남편과 나의 속을 후비는 말을 하는 미주가 미워지기까지 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일어난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으나

모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눈물샘을 하염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모희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있을까?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모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주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희를 만나라고도 했다.

미주는 모희 엄마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미주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 미주에게 맡겨두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내가 모희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말없이 커피잔만 비워내고 있었다. 창밖을 보거나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거나 그러다가 상대의 얼굴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옅은 미소로 멋쩍음을 대신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모희가 결심이라도 한 듯,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왔다고 했다.

‘본인은 그 누구와도 바뀌지 않았고 내 가족은 변함없다.’고 말하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로 냉정하게 나를 끊어 내었다.

‘내가 태어난 그날 그쪽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이미 우리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 생각한다.’며

서로 모르고 살았던 그대로 살아가자고 말했다.

슬픈 눈으로 모진 말을 하는 모희에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아이도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고는 뛰쳐나가버리는 그아이.

뒷모습도 볼 수 없을만큼 나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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