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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 본 AI의 속도

시작하는 글

by AI러 이채문

9월의 오후, 연구동 복도는 프린터 냄새와 미세한 팬 소음으로 가늘게 떨렸습니다. 모니터에는 논문 PDF가 겹겹이 열려 있고, 옆 창에서는 학생들이 코드 창과 채팅창을 번갈아 띄워 가며 토론을 이어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질문 하나를 쥐었습니다. “교수라는 일, 그리고 지식 노동은 앞으로 무엇으로 남을까.”




현장

세미나실 문이 닫히자 빔프로젝터의 광선이 먼지를 가릅니다. 한 학생은 모델 결과를 설명하고, 다른 학생은 생성형 AI가 만든 요약의 오류를 짚습니다. 키보드 타건이 리듬을 만들고, 홀수 줄에서만 나는 환풍기 소리가 미세하게 겹칩니다.
복도 끝 커피머신 앞에서는 “이제 코딩은 원리를 익히고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오갑니다. 코드는 AI가 초안을 내고, 사람은 실험 설계와 판단, 데이터 윤리를 맡습니다.
창문을 열면 잎사귀 스치는 소리와 함께, ‘물리적 세계로 나오는 AI’라는 발표 영상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오래 남습니다. 로봇 팔이 지퍼백을 여닫고, 종이접기를 마무리합니다. “가상에서 현실로”라는 문장이 공기 중에 부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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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맥락

생성형 AI는 노동의 전부를 대체하기보다, 업무 구성을 재배열합니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2040년까지 연평균 0.1~0.6%의 생산성 상승을 견인할 잠재력이 있으며, 핵심은 전환·재배치와 보완적 투자입니다.


국제기구의 최근 보고서는 “고용 붕괴” 단정에 신중합니다. OECD는 AI 노출이 단기적으로 고용 이탈 확률을 낮추는 경향을 보였다고 정리하고, 자동화 위험 직군이 평균 28% 규모임을 제시합니다. 위험은 분명하지만, 결과는 산업·기술 채택 속도에 따라 갈립니다.


직업 지형은 기술·지속가능성·데이터 보안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WEF는 향후 5년 내 일자리의 약 1/4이 변화하고, 성장 직군 상단에 AI·지속가능성·정보보안 역할이 자리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AI는 화면을 넘어 실물로 이동 중입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2025년 3월 ‘제미나이 로보틱스’와 ‘Robotics-ER(Embodied Reasoning)’을 공개하며 조작·공간추론 능력의 도약을 시연했습니다. 현실 과제에 대한 다단계 계획과 즉석 적응이 핵심입니다.



사유의 확장

이 변화의 결을 읽기 위해 저는 요한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를 다시 펼칩니다. 인간 문화를 떠받치는 축이 ‘놀이’라는 주장입니다. 기계가 계산과 제작을 나눠 가질수록, 우리는 “왜”와 “무엇을 위해”의 층위로 밀려납니다. 놀이 감각은 그 빈칸을 메우는 기술입니다.


놀이 역량을 좁혀 보면 세 가지가 도드라집니다. 첫째, 제약 속에서 규칙을 발명하는 상상력. 둘째, 협력과 경쟁을 오가며 타자와 맥락을 읽는 공감적 판단. 셋째, 실패를 실험으로 환원하는 회복 탄력성. 이는 데이터에 ‘정답’을 찾기보다, 문제를 새로 설계하는 힘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돌봄과 관계입니다. 고령층의 외로움 완화에 AI 동반자의 효과를 탐색한 최근 연구들은 “느껴진 경청”이 핵심 매개임을 시사합니다. 인간 대체가 아니라, 관계를 지탱하는 도구로서의 설계가 중요합니다. 규범과 안전장치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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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가 끝나고 조용해진 실험실에서, 저는 남은 커피의 온도를 느끼며 메모를 덧붙였습니다. “AI와 경쟁하지 말고, AI가 닿기 어려운 층위를 설계하자.”


질문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우리는 어떤 놀이 규칙과 관계의 기술을 발명해, 일을 일답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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