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면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의미가 있고, 취직에 성공을 하면 더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나의 장래는 탄탄대로일 것이라 착각했던 적이 있다. 세상물정 모르던 때 성인이 되어 돈을 열심히 벌다 보면 세련된 차를 몰고 있을 것이고, 더 열심히 벌어서 혼자 살기 적당한 평수의 집을 소유하고 있을 거라 상상한 적이 있다.
망상이다. 망상은 허황된 생각으로, 정확하게는 거만한 소망이다. 앞으로의 나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던 때의 꽃길을 향한 소망이다. 누군가는 약 2년간 고생하고 전역한 남자친구를 위해, 또 누군가는 종점 없이 열심히 공부한 끝에 고시에 합격한 친구를 위해 꽃신을 준비하면서 함께 전했던 말.
"이제 꽃길만 걷자."
뭐든 성취를 하거나 성공을 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인 걸까. 이후 그 사람이 가는 모든 길 곳곳에 예쁜 꽃들이 수놓아져 있을까. 가벼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변수가 무수한 하루하루에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는 건 어떤 형태로든 고뇌의 씨앗을 뿌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오는 해는 바라는 일 모두 이루어지길 응원한다는 형식적인 말을 써 보내지 않게 되었다. 오는 달은 전보다 더 행복하길 바란다는 게시물을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속 무언가가 당장의 일에 급급한 나날들이 행복하게 보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잘 버텨왔다 생각해서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지만, 그 순간순간은 누구보다 고뇌하였다는 걸 은연중에 의식한다. 그토록 원하던 대학의 합격했지만 질병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때, 두 번째 대학의 첫 수업을 앞두고 큰 수술로 금식을 하며 입학을 미루어야 했던 때, 매일 스스로를 의심하고 괴롭히던 취준 생활을 하였던 때. 이 모든 것들은 거만한 소망을 자연스레 잊게 했다.
내가 주변 사람들 중 유일하게 해외로 취업했다고 해서, 있어 보이는 IT업계 종사자라고 해서 '멋지다!'라는 한마디를 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가까이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업무에 허덕이는, 분기 목표 설정을 그나마 덜 추상적으로 써서 제출하는, 나도 한낱 직장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진 않을 것이다. 하루 지나면 잊히기 쉬운 그런 말은 또다시 거만한 소망에 빠지지 않게 가벼이 넘겨버려야 했다. 내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며 한숨만 연거푸 내뱉는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꽃길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숨이 옅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멋지다'라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한마디를 들었다는 건 그래도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한 거라고 믿고 싶다. 몇 차례의 수술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적이 있어도 지금은 보란 듯이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존감을 갉아먹은 취준생활이었을지라도 일본이라는 조금이나마 큰 무대에 발을 딛었다는 것. 이것 만큼은 받아들이고 싶다.
알고 보면 꽃길은 내 뒤로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 흙길을 걸으며 이름 모를 씨앗을 심고,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게 단단히 밟아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뭘 하든 애쓰고 애써 발견할 씨앗이겠지만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은 좀 더 유쾌하게 대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또 하나의 꽃길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분명하지 않아 울렁거리는 이 마음도 언젠간 성장통이었다고 깨달을 수 있길 바라며, 꽃길만 걷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