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 Aug 29. 2023

정신적 과잉 활동인인 내가 잠에 드는 방법

 정신과를 방문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은 없지만,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 소개된 아래 자가진단 리스트를 쓱 보고는 나는 '정신적 과잉 활동인'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뭔가를 잘못 선택한 날에는 밤에 잠을 못 잔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나 자신의 가치나 자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활동적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작은 결정을 할 때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해당되었다. 보기만 해도 '살아가기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멍 때릴 때 무슨 생각하냐는 내 질문에 아무 생각 안 한다는 친구의 답변이 부러웠다. 곧이어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을 말하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잠에 들기 전의 안락함은 괴로움과 맞먹는다. 눈을 감자마자 검게 닫힌 내 머릿속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된 생각의 문이 열린다. 과거에 후회스러웠던 일을 자책하고 잊고 싶은 순간을 회상하기도 한다.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긴 한 건지, 미래엔 원했던 모습이 되어있을지 등 아직까진 흔한 생각이긴 하다. 문제는 생각의 문을 못 닫고 있다는 것이다. 10시에 자려고 누웠지만 어느새 시계를 보면 새벽 3시가 되어있다. 역시 미라클 모닝 따윈 나와 맞지 않다.


 애써 생각의 조각을 깼지만 깨진 조각의 생각을 해 버린다. 층층이, 옆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서랍이 군데군데 열려있다. 편히 잠들기 위해 허겁지겁 닫는 상상을 한다. 하나의 서랍을 닫으면 다른 서랍이 열리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애써야 한다. 다른 방법은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어깨와 골반은 일직선으로 하고 허리는 구부리지 않아야 하며 결리지 않는 자세로 옆으로 눕는다. 뭉그러진 이불을 감쌌던 허벅다리에 냉기가 서서히 없어지고 무릎 옆쪽에 살짝 닿은 발뒤꿈치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심호흡을 하며 몸 전체에 힘을 뺀다. (사람은 자려고 누웠을 때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와 몸에 힘을 준다고 한다.) 오늘의 것들을 갖고 있는 머릿속에 내가 있고, 내가 그 주변을 청소하는 상상을 한다. 오만가지의 쓰레기를 주워 구석구석 청소한 후 쓰레기 통에 넣어 문 밖으로 던진다. 매일 이렇게 잠을 자기 위해 뇌랑 전투를 벌인다. 예민하고 또 예민하지만 덜 예민한 순간을 멋대로 느낄 수 있을 때 '나 이제 잘 거야'라고 생각한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질 때가 있다. 이땐 왠지 램 수면 단계에 들어섰다고 다시금 생각하고 싶어 진다. 나 이제 진짜 잘 수 있겠다. 이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


 사실 종종 놓쳐버린다. 그 원인은 옆 방 여자의 통화 소리가 될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어느 서랍이 또 열렸기 때문일 것이다. 부끄러웠던 순간이 떠오른다. 가장 슬펐던 순간이 떠오른다. 잘했거나 좋았던 순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부정적인 상상은 또다시 나를 생각의 굴레에 가둔다.


 어떻게 잠에 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 떠보니 아침이긴 하다.


작가의 이전글 꽃길만 걷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