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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Feb 24. 2024

마음이 힘든 이유

공감의 선택지

방과 후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때가 떠오른다.

차갑고 맑은 공기로 숨을 쉬는 이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학교는 조용했고 드넓은 운동장을 장악한 듯

힘차게 내리는 눈과 함께 내 마음은 두근거린다.


추위에 붉은빛이 돌던 볼과 입김을 보고도 추운지 몰랐다.

눈을 둥글게 만드는 방법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순수, 하다고나 할까.

맞는 것 같다. 간직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손바닥의 건조함, 바짝 마른 입술.

시간이 깨나 빨리 흘렀다.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큰일이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


한 마디를 공감으로 이해하다가

한 사람을 공감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니

간직하고 싶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나의 할머니.

버선발로 밥을 짓고 계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자린고비 할아버지의 등쌀에 편한 밤 못 지내시던 시절을 보내시다

이제야 두 다리 뻗고 한숨 돌리려던 평화로운 어느 날

이름도 생소한 파킨슨 병에 걸리시고야 말았다.


내가 왜 주먹을 못 쥐니.

내가 왜 변기 물도 못 내리니.

내가 왜 픽픽 쓰러지기만 하니.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했던 손녀를 위해 밥을 짓겠다던 할머니.

쌀을 푸다 쿵하고 쓰러지신 할머니.

자기는 됐다며 쌀을 주워 담으라고 하신 할머니.

담담한 척하시긴. 이마에 멍들었잖아, 할머니.


자꾸만 한 사람의 삶에 공감을 해 버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아

마음이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혼자 끙끙댄다고 해서

할머니의 건강이 호전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하루하루를 잘 버텨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심적 분리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야 그 힘듦에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차갑고 맑은 공기를 다시금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가다 새삼스레 물어본다.

힘들진 않은가.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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