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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클로버 Apr 15. 2024

뒤바뀐 시차, 테넷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27일 차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캐나다에 도착해서 첫 일주일은 시차 문제가 나를 많이 괴롭혔다. 인터넷에서 본 방법을 써보겠다고 낮에 부지런히 돌아다니기도 해보고 식사 시간을 조절해 보기도 했지만, 새벽 3시만 되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버리고 룸메와 눈을 마주치곤 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영혼이 태평양을 비행기보다 현저히 느린 속도로 건너오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괌 정도까지 왔나 봐. 이제 벤쿠버쯤 온 것 같아 등의 비유를 하면서.

이 사진들 사이의 간격이 일주일도 안된다.

 심지어 날씨는 얼마나 오락가락하는지. 전날 눈이 5cm 이상 쌓일 정도로 왔는데, 그다음 날은 다 녹을 정도로 쨍쨍하기도 하고… 마치 <테넷 Tenet, 2020> 세계관에 갇힌 기분이었다.

전 이 제스처도 안했는데요!

 테넷은 시간을 뒤집는 ‘인버전’ 기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를 막아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답게 시간의 흐름이 오락가락하고, 서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집중이 필요한 영화다.

인버전된 총을 쏘면 보이는 장면 : 총알이 발사되는 게 아니라 총으로 되돌아옵니다.

 테넷을 잘 이해하려면 인버전을 이해해야 한다. 인버전은 말 그대로 시간을 뒤집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술인데, 단순히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과는 다르다. 과거의 한 지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소리도, 공기 흐름도, 심지어 열역학도 반대로 흘러간다. 불편한 지점이 많긴 하지만, 인버전 상태에서 오래 머물면 몇십 년이라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다행히도 주인공도 인버전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해할 기회는 많다.

비행 중간 촬영한 장면.

 나의 경우엔 비행기가 마치 인버전 장치처럼 느껴졌다. 우연히도 한국-토론토의 시차(13시간)와 비행시간(13시간)이 일치해서 저녁 7시에 출발해서 13시간을 날아왔는데, 같은 날 저녁 7시에 내렸다. 정말 말 그대로 좁은 공간에서 고생한 13시간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도착해서는 시차도 오락가락, 날씨도 오락가락. 몸의 물리 법칙이 뒤집어진 사람 마냥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 두고 온 덕질 본진과 SNS 타임라인은 꼭 내가 자고 있을 때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쌓인 이슈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인버전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타임라인 거슬러 올라가는 건 아직도 그러지만ㅋㅋ

 테넷은 정말 정교하게 설계된 영화다. 쌓아 올리는 세계관이 견고해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흐름을 놓치게 된다. 내 기준 이 영화가 정말 신기한 것은 N차 관람을 하면서도 이 특징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한 3~4회차 관람을 할 때쯤 자신감이 차오른 나는 뜨개질을 하면서 테넷을 관람하기에 이르렀는데, 중간부터 흐름을 놓쳤다. 분명 세계관을 다 알고 전부 이해했었는데! 

토론토의 이곳저곳 1) CN타워 2) 하버프론트 3) 리버데일파크 4) 토론토 시청(다운다운의 건물들)

 한 달 살아본 결과 캐나다도 봐도 봐도 신기한 구석이 나오는 것 같다. 서울 & 부산을 압축해 놓은 것 같은 도시 구성도 신기하고, 생각보다 장애인이 자주 보이며 유니버셜 디자인을 해 놓으면 모두에게 편하다는 것도 새삼 신기하다. 그 외에도 쓰레기 처리 방식, 트램 같은 TTC 등 신기한 거야 끝도 없지만 제일 신기한 건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나랑 룸메야 아직 일자리가 없어서 주중 낮에 나온다지만, 그 많은 사람은 어떻게 다 나와 있지..?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지? 근데 나도 그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게 신기하다.

사심 가득한 사진 선택�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중 인기 없는 편에 속하지만, 내 최애 영화 순위에서는 3위 안에 들어가는 영화다. 영화관에서 보고 반해서 추후 VOD를 구매해서 비하인드 영상까지 다 챙겨봤다. 인상적인 오프닝,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 서사의 반전, 스케일이 크지만 섬세한 연출 모두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엔딩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놀랍도록 평범한 나의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서 주도자 같은 인물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원래 덕후는 벅차오름을 한번 느끼고 나면, 그 작품을 영원히 마음에 품게 된다. 그래서 나는 테넷을 마음에 품었다.

오늘의 노을 in 리버데일 공원

 동생과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하늘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리버데일 공원에 앉아 룸메와 노을을 보며 그때 생각이 잠깐 났다. 놀랍도록 평범하지만, 소중한 나의 일상. 아직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토론토를 마음에 품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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