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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클로버 May 25. 2024

이제부터 좀 변해볼까, 전우치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67일 차

 누군가가 내 주위로 부적을 뿌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영화를 리뷰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이번 영화는 <전우치, 2009>로 선정해보았다.

 전우치는 부적만 믿고 다니는 망나니 도사 전우치가 500년 만에 봉인에서 깨어나 요괴를 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물론 이 영화 말고도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많지만, OTT의 사정으로 인하여 전우치를 먼저 보게 되었다ㅋㅋ

 전우치는 대학교 시절 시험 범위였던 영화 중 하나다. 타의로 질리도록 봤는데,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유일한 영화다. (시험 범위가 어떻게 영화냐고? 하하… 나도 그게 궁금했다. 다 필요 없고 성실도로 성적을 가르겠다고 선포하신 교수님께서 ‘전우치가 봉인에서 깨어나서 부적으로 제일 처음 도술을 부린 곳은? A. 음악 재생 B. 여의봉 제작 C. 분신술’ 같은 식의 문제를 내셨다. 덕분에 영화를 질리도록 돌려보면서 공부했다는 사실. 참고로 그 외 시험 범위로는 웨어울프, 쿵푸팬더가 있었다. 쿵푸팬더 수련할 때 만두가 몇 개 날아가는지까지 세어본 사람이다 내가)강동원의 외모도 한몫 했지만, 현실적이지만 해맑은 임수정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번만큼은 영화를 핑계삼아 토론토에서 겪은 요상한 일들을 써보겠다.


 첫번째, 요상한 날씨

 “도사는 무엇이냐? 바람을 다스리고,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고…’

이렇게 맑다가도 갑자기 비가 오고 우박이 내린다. 세번째 사진은 안개.

 요즘에는 해가 9시 넘어서야 진다. 6시쯤에 노을이 시작되는데, 이는 곧 노을만 3시간을 넘게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보다 공기가 좋고, 자연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시간이 나면 산책하러 가곤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꼭 일 없는 날에 날씨가 안 좋고, 일 하고 오는 길에 날씨가 기가 막힌다. 그러니까 계속 일해서 힘든 날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산책하러 간 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후회한다. 체력을 아꼈어야 했는데… 하면서.

노을이 묻은 심코호

 엊그제는 심코호를 다녀왔는데, 가는 길에 비가 조금 오더니 도착하고 나서는 또 엄청 맑아서 예쁜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진도 찍으면서 힐링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안전 문자가 울리더니 번개가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짜 그 순간은 전우치가 도술이라도 부린 줄 알았다.

그런 식으로 잠깐 소나기 오는 경우도 많고, 우박도 본 적 있다. 듣기로는 올해 유난히 봄비가 많이 오는 거라고 했다. 이제는 맑은 날씨가 더 많으면 좋겠다.


두 번째, 일자리 구하기

‘잠깐 얻었다가 오랫동안 기다리는구나~’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4월에 지원한 영화관 알바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였다. 전화로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근데 시간과 장소를 일요일에 메일로 보내줄 테니 확인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정말 일요일까지 메일이 오지 않았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내가 메일을 보내준다는 내용을 잘못 들었나? 고민했다. 가짜였나봐..생각하려던 찰나 일요일 저녁에 메일이 왔다. 5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면접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타임라인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4월 초에 지원 – 5월 중순에 전화면접 – 5월 말에 실물 면접인 것이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여기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지금 일하고 있는 J 마트. 혹시 몰라서 블러처리를 했다.

 근데 그 와중에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면접도 없이 이력서 내러 간 게 전부다. 대뜸 다음 주에 트레이닝 올래? 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비밀 유지 서약서까지 썼다. 그렇게 거창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벌써 주급도 두 번이나 받았다. 내 생각에도 내가 진짜 신기하게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분만 드는 뜨개질 

“행여 책을 읽게 하거나 바느질을 하게 해도 내가 다시 온다.”   

  ㅋㅋ내가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라서 그냥 넣어봤다. 과부는 바느질을 싫어해서 천민이 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뜨개질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뜨개질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은 캐나다의 공휴일 중 하나인 빅토리아 데이였다. 그날은 룸메와 함께 하버프론트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달디단 포도와 육포, 감자칩과 커피 등등 맛있는 간식을 싸 들고 잔디 위에 돗자리 깔고 앉아 있었다.

 역시 그 피크닉에서도 뜨개질이 함께 했는데, 대뜸 어떤 캐내디언(ㅎㅎ외국인이라고 썼다가 친구 말 듣고 정정)이 와서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네 뭐 뜨는 거야?’ 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도안 사진을 보여주면서 ‘스웨터 뜨고 있어~ 지금 뜨는 부분은 넥카라야!’라고 말해줬더니 ‘와우! 스웨터를 뜨고 있다고? 정말 멋있다! 잘 완성하길 바랄 게~’ 하고 쿨하게 갔다.

6cm 정도로 자란 카라 / 네잎클로버 무늬를 시도중인 양면 댕기 / 세일러카라 스웨터

 그날 시작한 카라는 이제 6cm 정도 자랐다. 언제 스웨터가 될지 모르겠다. 사실 댕기도 뜨고 있고, 세일러 카라 스웨터도 떠보고 있다. 한국에 가기 전에는 하나라도 FO 하겠지!


네 번째, 제 3 외국어, 사투리

 “나무 사다남 삼막삼못다 훔”

 정체 모를 외국어가 늘고 있다. 바로 경상도 사투리다. 룸메는 대구 사람, 집주인은 부산 사람…안 그래도 주변인 말투가 빨리 옮는 편인데, 여기서 듣는 한국어 인풋이 사투리밖에 없다. 심지어 밥 먹으면서 하말넘많까지 챙겨 봤더니 룸메는 내가 계속 사투리로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떡하겠어.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0개 국어에서 한국어 0.8 영어 0.6 도합 1.4개 국어 정도로 살고 있었는데, 사투리 0.1이 추가되어서 총 1.5개 국어가 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대사 쓰는 연습이라도 해 볼 예정이다.


토론토의 풍경들. 라일락 향기는 저 멀리에서도 맡을 수 있다.

 사실 제일 믿기지 않는 것은 내가 토론토에 온 지 2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엊그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네가 간 지 2년은 된 것 같다!’라고 하셨다. 내가 해외로 나와 있는 사이에 우리 집은 이사를 앞두고 있고, 아빠 차도 바꾸실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에는 장미가 잔뜩 폈고, 여기는 라일락이 잔뜩 폈다.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다. 복사꽃을 꽂으며 엔딩을 맞이하는 전우치처럼, 향기로운 생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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