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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May 28. 2024

정원멍은 사색가로 가는 길




  줌요가를 하던 중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담고 싶다는 마음에 허겁지겁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고요한 묵직함이 정원을 가득 메웠다. 빛의 각도에 따라 밝아지더니 나무와 화초들이 경쾌하게 인사를 했다. 


  정원이 예쁘게 가꾸어진 후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정원에서 책 읽기였다. 코끝에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 세포 하나하나의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책을 읽다가 정원을 한번 바라본다. 차를 한 모금 넘기며 지금 이 순간을 온몸으로 담아본다. 이보다 여유로울 수는 없다.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이름 모를 그라스들, 보라색의 하늘하늘한 버들마편초, 보라색의 붓들레아, 흰색과 보라색의 리아트리스도 함께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한 편의 오케스트라 연주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들썩거린다.
 
    직장에서 몸과 맘이 너덜너덜해진 날, 마지막 계단에 서서 바라봄 정원은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천국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인 듯 억울함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을 깨끗이 세탁해 주었다. 데크에 가방을 집어던지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어두운 정원이 주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좋다. 어둠은 두려움이 아닌 위로로 다가왔다. 

 ‘지금 이 순간은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어.’


비 오는 날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꽃들이 축 처져 있다. 온몸으로 물을 담고 있어 무거운가 보다. 물기를 조금만 머물고 있을 땐 색들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이지만 오늘처럼 많은 물을 담고 있을 땐 색이 탁하게 보인다. 버거운 듯 옆으로 누워 버린 모습에 내 마음도 짠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다가 힘들 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면 표현을 하지만, 더 많은 양이면 무너진다. 나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참을 수 있는 무게가 넘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질문을 통해 나는 점점 사색가가 되어간다.


  관심을 갖고 바라볼 때마다 정원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원은 같은 듯 보이지만 다르다. 정원사에게만 보이는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는 언제나 흥미롭다.


  비가 내리는 정원을 계속 바라보자,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보였다. 눈으로 곤충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함께 리아트리스, 버들 마편초, 향기로운 미스킴 라일락 꽃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어떻게 꿀이 있는지 알까? 그들은 모든 꽃에 앉지 않고, 선택적으로 꿀을 빨아들인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곤충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처럼, 우리의 삶도 계속 움직인다. 지구라는 공동체와 생명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움직임들이 반복되고 그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커다란 먹이 생태계를 유지하고 나 또한 정원관리를 통해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올라간다.





 정원멍 중 노을멍을 빼놓을 수 없다. 일을 시작하면서 노을멍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 하늘, 정원, 심지어 집까지 모든 것이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황홀한 노을멍은 해 질 녘이 되면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절정이 지난 후 내리막을 생각하게 하는 일몰은 기쁨과 동시에 슬픔을 가져다준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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