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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May 21. 2024

나는 행복한 청소부입니다

풀뽑기 중독



나는 오늘도 장갑을 끼고 연장들을 챙긴다. 전원생활을 하면 정원이나 작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누구나가 빠지는 중독이 있다. 일명 풀 뽑기 중독이다. 


봄이 되면 심어놓은 씨앗들이 고개를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뿌듯함으로 감상하다 눈에 들어온 녀석이 있다. 바로 풀이다. 2월 말에는 이제 올라오기 시작해 쉽게 뽑힌다. 때로는 튼실한 뿌리가 올라와 약초라도 되는 듯 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에 혼자 웃곤 한다. 


3월에는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많이 보인다. 덕분에 내 손도 바쁘게 움직인다. 나의 노고와 상관없이 비가 온 뒤에는 보란 듯이 한 뼘씩 자라 있다. 어디를 가도 풀만 보인다. 초록의 잔디 사이에 풀을 본 적이 있는가? 풀을 뽑고 싶은 욕구가 생겨 허리를 숙이고 네잎클로버를 찾듯 잔디 사이를 살핀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풀을 찾아 뽑아내는 나는 풀 뽑기 전문가다. 


대각선으로 큰 시누이댁에서 우리 집이 보인다. 한참 올라가며 계단 양쪽에 있는 풀을 뽑고 있으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적당히 해. 나중에 아파서 병원 간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 참으로 따뜻하다. 덕분에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을 보며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란 생각이 든다. 


여름으로 갈수록 충분한 햇볕과 비를 통해 나무들과 꽃들은 쑥쑥 자랐다. 풀 또한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앉아서 풀을 뽑거나 가지를 자르고 있으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 날, 머릿속으로는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야지. 아니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 보니 휴대전화가 방전되었다. 큰 시누이가 쫓아오셨다.

 “너무 오래 일하는 것 같아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쓰러졌나 걱정이 됐어.” 


휴대전화에는 남편의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이 넘게 와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전화 좀 받아. 다들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계속 전화 왔었어.”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남편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그저 정원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을 뿐인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풀 뽑기 시작하면 시간이 순간 삭제된다.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야지.' 마음을 먹지만 그만둘 수가 없다. 내 손이 닿은 쪽과 닿지 않은 쪽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방법을 찾다 알람을 설정해 놓고 풀을 뽑았다. 하지만 알람을 자연스레 끄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나를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풀 뽑기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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