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과 꾳쇼핑
꽃구경이 꾳쇼핑을 이기는 순간이 올까? 꽃구경은 맘과 다르게 늘 뭔가를 사가지고 온다. 구경만하고 와야지 다짐을 하는데도 말이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하는 중에 큰 시누가 전화를 했다.
"차가 보이던데 오후에 뭐 해?"
비옷을 입고 정원에서 놀아볼까 생각 중이었지만, "별일 없어요."
오전 중에 읽어야 할 책 다 읽고 토론에 사용할 발제문도 윤곽을 잡았기에 뭘 해도 마음이 편하다.
"남사 꽃구경 갈래?"
"좋죠. 20분 후에 집 앞으로 내려갈게요."
남사 언제 갔다 왔지? 맘이 이미 붕 떠 있다. 눈으로만 보고 올 거야.
오랜만에 만난 시누이랑 조카들 소식, 손녀 소식과 가족들 소식과 정원 이야기로 입이 바빴다.
새로이 생긴 집들이 있지만 선뜻 들어가지는 않는다. 비도 오고 가던 집을 먼저 들러 보고 싶었다.
예삐플라워 아울렛으로 갔다. 이쪽에서 꽃좀 키운다는 사람은 다 아는 곳이다.평일인데도 주차장에 차들이 다 차 있고 사람들도 많다.
화사한 꽃들이 우리를 반겼고, 그 꽃들을 보면서 설레며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뭐죠?" 정원 생활을 몇 년 더 먼저 시작한 시누이에게 마음껏 질문을 한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일단 노지 월동이 가능한 지를 살펴본다. 그다음에 살까 말까 어디에 심어야 할까 고민을 한다. 이렇게 잠재 리스트를 작성한다.
정원에 뭘 더 추가할 수도 없는데 자꾸 사려는 마음이 생길까? '한해살이 또는 두 해 살이 식물일 경우 사라지니까,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거야.'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본다.
입구 쪽에 할인코너가 있다. 겹카랑코에 한 포트당 1800원이다. 작은 장미도 한 포트당 2000원이다.너무 싸다.
"너무 싼 거 아니야? 꽃값은 정말 싸. 커피 한 잔도 안 하는데 오래오래 볼 수 있으니 가성비가 훌륭해."
"아, 그렇죠."
나오는 길에 사기로 하고 더 둘러보았다. 속도를 맞추기도 하고 각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더 오래 머물기도 한다. 정원 사이즈도, 심어져 있던 것들도, 취향도 다르니 좋아하는 종류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꽃들은 무조건 예쁘다. 그냥 예쁘다. 꽃들은 신기하게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마음이 힘들때 시장구경을 간다고 한 사람들도 있다. 꽃구경만 할까?
카랑코에 4포트와 월동이 된다고 해 작년에 사다 심었다 사라져버린 델피니움 한 포트를 사서 나왔다. 커피 한 잔과 디저트 하나 정도의 가격이다. 코가 벌렁벌렁 입이 헤벌쭉 해졌다.
평소에 들렸던 한플라워는 패스 새로이 다니시던 곳을 추천했다. 남사 화훼 거리의 경향을 설명해 주셨다. '야생화로 유명한 집이 문을 닫아서 대신에 다른 집이 빛을 발하고 있어, 한플라워는 좀 변했어. 처인은 가는 길에 가보자.' 등등.
남사화웨집하장에 들려서 쭈욱 둘러보고 나오는데 처음 보는 특이한 메디닐라꽃을 발견했다.
재빨리 나와 야생화로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남사 들꽃 농원으로 갔다. 눈에 들어오는 꽃들이 많다. 천천히 둘러보며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괜찮네, 여기가 조금 더 비싼 것 같아. 가격이랑 상태 비교에 들어갔다.
루피너스 2개를 골라 계산하려고 하니 오늘부터 전 품목 20%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광고 문구가 붙어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았다. 꽃만 보였던 것이다. 20% 할인한다고 하니 꽃구경만 하겠다는 맘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편이 키우고 싶어 하는 클래마티스 2종을 더 샀다. 매년 한 번씩 사지만 우리 집에서는 버티지를 못하고 하나만 살아있어 안타까웠던 종류다.
남편에게 생색을 내야지. "거금을 주고 클래마티스 2종류나 사 왔어."
계산하고 나오면서 "언니, 이제 점심값도 커피값도 넘었어요."라는 말에 시누이가 크게 웃었다.
단지 꽃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쇼핑을 하고 만 것이다. 즐거운 꽃쇼핑을 말이다. 백전백패의 꽃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