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아 어디 있니?
25년 산 서울을 떠나 낯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삶은 단순해졌고 관심사는 곤충, 새, 길냥이들과 각종 식물 심지어 풀까지도 다양해졌다. 전원생활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길냥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빨리 알려 주고 싶었다.
“딸, 이곳에 고양이가 계속 지나다녀.”
아이의 흥분된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엄마, 길냥이들은 물 마시는 게 쉽지 않대. 그릇에 계속 깨끗한 물을 줘.”
딸아이 말대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물 주기 1년쯤 되었을 때, 고양이 두 마리가 데크 위에서 자기 집처럼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잠을 자다 가곤 했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용기를 내 우리 부부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갔다. 검은색 고양이는 우리와 밀당을 하는 듯 보였다.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계단 중간쯤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가까이 가도 별 미동이 없이 자리만 조금 이동했다.
다음날 휴무라 오전 내내 정원관리를 했다. 풀도 뽑고 모종을 옮겨 심고 가지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디선가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반가움에 얼른 집으로 들어가 오래전 사놓은 간식을 챙겨 나왔다. 바위에 간식을 짜주자,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와 먹고 사라졌다.
아이와 통화를 했다.
“검은색 고양이가 경계를 하면서도 엄마가 짜준 간식을 먹고 사라졌어.”
수화기 너머 아이가 기뻐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고양이 사료와 간식 바로 온라인 주문할게.”
역시 요즘 아이들은 행동이 빠르다.
이후 검은색 고양이는 더 자주 더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먹이를 주자, 경계심이 풀렸는지 새벽에 울며 나와 기다렸다. 대부분 남편이 먹이를 주었다. 이제 녀석은 남편이 나오는 시간을 알고 있었다.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선가 야옹 하며 달려왔다. 먹이를 달라는 건가 싶어 사료를 주면 먹고 나서도 가지 않고 계속 야옹 소리를 냈다. 놀아달라고 하는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털을 만져주면 기분이 좋은 지 비비적대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때론 눈을 감고 혼자 그루밍을 하거나 마치 요가하듯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엉덩이에 상처가 나서 왔다. 꽤 깊은 상처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지인에게 물으니 후시딘은 발라줘도 된다고 했다. 두 번 바르고 나니 상처가 많이 나아졌다. 회복 속도에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 집에 먼저 드나들었던 고등어에게 물렸을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다 남편이 말한 ‘까망이’로 정했다. 이후 까망이로 불렀다. 싫지 않은 지 남편의 부름에 따라왔다. 남편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까망이와 함께 아이처럼 정원을 뛰어다녔다. 까망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아졌다.
까망이 말고 고등어라고 부르는 고양이가 가끔 데크에서 놀다가 갔다. 까망이보다 훨씬 크다. 까망이는 놀 때도 먹을 때도 계속 동태를 살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고등어가 나타나면 바람처럼 휘리릭 도망을 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걸까? 까망이만 사료를 줘야 할지 고등어를 못 오게 해야 하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럴 때면 책을 펼치곤 했다.
풀을 뽑고 있는데 집 뒤쪽 소나무 위에서 까치가 계속 울어대고 있었다. 궁금증에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 까망이가 소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 아래쪽에는 고등어가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어가 사라졌는지 까망이가 조심조심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한 번은 퇴근길에 차에서 내리는데 야옹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까망이가 있었다. 까망이가 나를 쳐다보더니 계단 한 칸을 올라갔다. 나도 따라 올라갔다. 이번에는 계단 몇 칸을 올라가서 야옹 하고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우리는 몇 번을 반복해 계단을 올랐다. 퇴근하는 날 까망이가 있는 날이면 함께 놀아주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까망이와 추억이 많이 쌓일 때쯤 어디선가 나타난 작은 고양이 한 마리. 자세히 보니 고등어랑 닮았다. 우리는 ‘작은 고등어’라 불렀다. 작고는 무서웠는지 먹이만 먹고 사라졌다. 까망이도 작고가 먹을 때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여자 친구인가?’ 궁금하던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작고가 엄마인 냥 새끼고양이는 작고 품에 파고들었다. 작고도 아직 어린데.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지 2주일 정도 지났다. 까망이가 갑자기 현관에 있는 고양이 쉼터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먹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료를 줘도 먹지도 않고 망을 보고 있었다. 한 번씩 물만 마셨다. 작고와 새끼 고양이가 먹고 있는 동안 멀리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까망아 네 집이야, 와서 먹어”
까망이는 어떤 말을 해도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기를 3일 하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딱 한 번 새벽에 나타났지만 이후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던 것일까. 5개월이 지난 지금도 까망이가 그립다. 핸드폰 배경 화면을 까망이에서 바꾸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우리 가족과 우리 집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까망아, 잘 지내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