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준비생 Apr 08. 2023

곱창 1인분과 가난한 자존심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인관계는 좁아졌다. 그래도 초반에는 가벼운 안부 인사 정도는 꽤 여럿과 주고받았다. 어쩌다 보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는 머쓱한 말에 열심히 준비해서 꼭 합격하길 바란다는 응원의 멘트. 그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이라곤 서로가 몰랐을 것이다. 아무한테나 시험 준비 중임을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쨌든 합격하면 되니까, 할 거니까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의 2, 3년 합격 루트 대열에 나는 결국 끼지 못했고 멈출 수 없는 도박에 빠진 사람처럼 한번 더를 외쳤다. 한 해가 더 추가될 때마다 주변에서 오는 안부 인사는 더 이상 나에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락한 사람에게 ‘요즘 뭐 하고 지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여보세요’와 같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별 의미 없는 말이란 걸 나도 안다.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에 심지어 실제론 딱히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어라 이야기를 시작할지 몰라서 띄운 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에게 뭐 하고 지내냐는 물음은 교무실에 불려 와 선생님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잘못을 실토해야 하는 학생의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올해도 그렇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일 년 더 하게 되었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공시생에게 무소식은 나쁜 소식이 대게일 것이다. 참고해 주시라.)


  ‘혹여 그런 내 근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으려나’

  ‘그럼 나를 안쓰러워할까 아니면 그럴 것 같았다는 반응일까’

  ‘역시 뭐가 됐든 다 싫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더더욱 없게 되었고 일방적인 연락에도 한계가 있다 보니 서서히 멀어지게 된 사람들이 쌓여갔다. 결국 주변에는 부끄러움 따위 느낄 필요가 없거나 조금 덜 부끄럽거나 한 정도의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항상 부족한 공시생이기에 정말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흔치는 않았다. 매일을 앉아서 하루종일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랬으면 이런 글이 아니라 합격 수기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외출을 한다는 자체에서 오는 심적 부담감이 존재했다. 공시생이란 신분을 갖고 있는 이상 양심상 지켜야 하는 선 같은 것이랄까.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죽어라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죽어라 노는 것도 아닌. 성인이 된 지 꽤 지났음에도 똑같이 그 모양이었으니 나의 공부는 성숙함에서 오는 노련미 따위는 밸 생각이 없나 보다. 가만히 앉아서 공상으로 며칠을 버려도 장소가 독서실이라면 선에 아슬아슬 서있는 것이지만 밖에서 며칠을 놀고먹는다면 그건 선을 넘는 것이라 스스로 판단했다.


그래도 역시 나는 전부 다 끊어낼 만큼 독하진 못했어서 두세 달에 한번 정도는 지인들을 만났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만나면 자연스럽게 얻어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말 하지만 거저 버는 돈이란 없고 회사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듣고 있자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맘 편이 얻어먹을 수 없었다. 받기만 하는 성격도 아니기에 밥값, 커피값 조금씩 모아서 한 번씩은 꼭 내가 내기도 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한 번은 내가 내야 하는 그런 타이밍. 카드에 한 6만 원 정도 있었을까. 저녁으로 뭘 먹을까 둘이 함께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곱창집을 제안했다. 나 역시 곱창, 대창 정말 좋아하는 내장마니아다. 하지만 이 음식에는 가장 큰 단점이 있다. 바로 가성비. 1인분이 절대 1인분일 수 없는 음식. 양은 너무 적고 그에 비해 가격은 1인분에 내 노량진 한 끼 밥값 3~4배는 되는 정도이다. 순간 머리를 굴려서 계산을 해보았다.


  ‘곱창 2인분은 양이 너무 적은데… 그렇다고 3인분을 시키기엔 너무 비싼걸.‘


그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볶음밥. 그렇다. 볶음밥이 있었다. 적당히 맛보고 부족한 양은 코리안 후식 볶음밥으로 채우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나만의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곱창집으로 결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퇴근 후 몰려온 시끌시끌한 넥타이 부대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자니 얼핏 나도 사회 구성원인 척 스며든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어.” 하면서 털어내는 술맛이랄까. 물론 내 오늘 출근은 노량진이었지만. 친구의 요즘 사는 이야기 그리고 누구는 어떻게 살고 있다더라 결혼 준비나 이직 혹은 취업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안주삼아 한 잔 두 잔 비워내니 한 병은 금방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술기운이 반갑게 올라오던 그때 친구도 흥이 올랐는지 곱창 1인분만 더 시켜서 술도 더 먹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뿔싸.

그렇게 되면 예산초과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무안을 줄 친구도 아니었지만 더 시키기에 돈이 없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신음인지 동의의 말인지 알 수 없는 나의 으응거림을 뒤로하고 결국 곱창은 추가되었다.


  ‘부족한 돈은 어떡하지. 엄마한테 부탁해 볼까. 아니면 친구한테 솔직히 부족하다고 얘기할까’


기분 좋게 올라오던 술기운에 저릿저릿한 것 같았던 머리가 순간 바짝 정신 차려졌다. 쫄깃쫄깃 입에 착착 붙던 곱창이 이제는 입안에서 질깃하게 의미 없이 굴러다녔다. 돈 1, 2만 원이 부족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처지라니. 그 속을 모를 친구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고 나는 돈 생각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가방 속에서 생리대를 꺼내려 손을 순간 친구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는 게 아닌가.


  “몰래 계산하려고 그랬지? 지갑 여기에 두고 가.”


내가 화장실 가는 척하고 계산하려는 줄 알았었나 보다. 그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지고 있었는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다. 당혹감과 민망함, 어쩔 줄 모름이 뒤섞여 잠시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나는 정말 화장실 다녀올 거라며 친구를 안심(?)시키고서야 다녀올 수 있었다.





결국 그날의 계산은 친구가 했다. 다 먹고 일어서려는 찰나에 친구가 먼저 내가 화장실 간 사이 이미 계산 다 했다며 나가기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돈이 없었던 걸 알아차린 건지 애초부터 자기가 낼 생각이었던 건지. 돈도 부족하면서 내가 내겠다는 거짓 제스처를 할 만큼 뻔뻔한 성격도 못되고 쥐고 있는 알량한 자존심에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 몰래 상황을 종료해 준 친구의 계산은 첫 번째로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몰려오는 고마움과 나 자신에 대한 씁쓸함은 돌아가는 길을 무겁게 해 주었다.


지금도 가끔 곱창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 합격을 다짐했었다. 더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실은 그때 그런 사정이 있었고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합격에 실패했고 금의환향한 까치는 불가능했다. 얼마 전에도 그 친구를 만났는데 아직도 그때의 내막에 대해서 친구는 모르고 있다. 나아진 삶에서 과거의 결핍은 좋은 추억이 되겠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삶에서는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기에 나에겐 아직 현실이다. 지금은 수험기간 동안 받았던 고마움을 그 이상은 못해도 하나씩 갚아나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픈 청춘들이 모이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