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전 제주의 봄은 너무도 무자비하고 참혹한 생지옥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집안 역시 4.3의광풍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제주 4.3 당시 우리 집안에서는
네 분의 어른이 4.3의 광풍에희생되셨습니다.
저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가 경찰에 끌려가 총살되셨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얘기해 주셨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할 말을 잊었더랬습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큰아버지는 4.3 사건 당시 경찰에 의해끌려가신 후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고 이듬해 1949년 10월에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당하셨는데, 끝까지 무죄를주장하셨다고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어 헛묘제사를 지내오다 지난 2009년 정뜨르 비행장 유해 발굴당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큰아버지 유해를 찾게 되었고, 2011년 3월 26일
4.3 평화공원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어머니 역시 경찰에 끌려가서 총살을당하셨는데 어디서돌아가셨는지 장소를
알 수 없어 아직까지 시진조차 찾지 못하고 행방불명 희생자로 남아계십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큰어머니가 당시 임신을 하셨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아버지께는 조카가 되고 내게는 사촌이되었을 가여운 아기는 세상 빛도 못 보고 하늘의 별이 되었으니 너무도 마음이아팠습니다.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정방폭포에서 총살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는 겨우 다섯 살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겪었을 차마 짐작할 수 조차 없는 모질고 가혹한 시련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을큰 합니다.
사진출처: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작년 4.3 희생자 추념일에 처음으로부모님을 따라 4.3 희생자 추념식에 갔었습니다.
예전에 몇 번 4.3 평화공원에 갔었지만 4.3 희생자 추념일 행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 평소와는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4.3 평화공원
사진- 여운 오현진
4.3 평화공원 유해 봉안관과 위패 봉안실에 참배를 드리고 행불인 표석을 모신 곳에 가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심하게불었었는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표석을 찾아 인사를 드릴 때마다 해가 나와 햇살이 표석을 밝게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큰아버지는 정뜨르 비행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뜨르는'우물이 있는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옛 정뜨르 비행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현재는 제주국제공항이 되었습니다. 제주공항 남북 활주로 북동쪽 지점에서 1949년도에 정뜨르 비행장에서 희생되신 행불 수형인 분들의 유해가 발굴되었고, 그곳에 저의 큰아버지도 계셨습니다. 제주공항,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내딛던
공항 바닥, 그 차가운 땅아래에 큰아버지가 두 손이 묶인 채 63년간을 편히 눕지도 못하고 묻혀 계셨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2020년 설에 수원 남동생네 집에 부모님과 함께 설을 쇠러 올라가던 날, 제주 공항에서 옛 정뜨르 비행장 남북 활주로 북동쪽 방향을 보면서 큰아버지를 비롯한 행불 수형인 영령들을 위해 성호를 긋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설을 보내고 제주도로 내려왔을 때도 공항에서 남북 활주로 북동쪽을 바라보며 추모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지금은 공항에 갈 기회가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행불 수형인 분들과 생존 수형인 분들은
그 당시 상황을 목격한 분들과 생존 수형인 분들이 직접 겪은 증언이 있었지만,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물증이 없어 4.3 희생자로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1999년 9월 15일 정부기록보존소
에서 발굴한 제주 4.3 수형인 명부가공개되어4.3 당시 군법회의(군사재판)와 일반재판이 모두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행불 수형인과 생존 수형인 분들이 억울하게 죄도 없이 감옥살이를 하고 희생되셨다는 것이증명되었습니다.
지난 2021년 2월 26일 4.3 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고, 3월 16일 제주 4.3 행불 수형인 재심 재판에서 335명(군사재판 행불 수형인 333명+ 일반 재판 생존 수형인 2명)
의 행불 수형인 분들이 73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저의 큰아버지도 이날 무죄 선고를 받으셨지요. 무죄 선고가 내려지던 그 법정에 당시 다섯 살 아이였던 아버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유족의 자격으로 앉아계셨습니다.
19살 창창한 나이에 끌려가 돌아가신 지 73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으신 큰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을큰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정방폭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방폭포
사진- 여운 오현진
폭포의 물줄기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는 서귀포의 아름다운 경승지로 유명한 관광명소이지만, 4.3 당시 서귀포 지역 최대의 학살터로 서귀리와 동광리, 태흥리, 위미리, 의귀리등 서귀포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곳 정방폭포에 끌려와 희생되었습니다. 저의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총살당하셨다고
합니다. 정방폭포에 갈 때마다 이곳에서도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를 비롯해 여기서 희생되신 4.3 영령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리곤 합니다. 정방폭포의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노라면 4.3 당시 희생되신 분들의 눈물 같고, 우레와 같은 폭포소리는 마치 4.3 영령들의 한 맺힌 절규처럼 들리는 듯하여 가슴이 저려옵니다.
정방폭포 4.3 유적지 안내판
사진-여운 오현진
정방폭포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면 바로 매표소 옆에 정방폭포 4.3 유적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답니다. 몇 년 전까지 없었는데, 최근에 생겨서 너무 잘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정방폭포에 가게 되면 폭포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꼭 한 번씩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방폭포 4.3 위령공간
사진- 여운 오현진
정방폭포를 지나 서복전시관으로 연결되는 올레를 걷다 보면 오른쪽 아치형 문 안쪽에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이 보입니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되신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공간입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 참배하면 됩니다. 여기에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존함도 위령비에서 볼 수 있고 추모할 수 있어서 저는 요즘은 이곳을 지나게 될 때마다 위령공간에 들러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리고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참배를 하고 나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진- 여운 오현진
서복전시관을 벗어나 자구리 해안으로 가는 길에 또 하나의 4.3 유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소남머리인데요, 이곳에서도 4.3 당시 많은 분들이 희생되셨다고 합니다. 자구리로 가기 전에 소남머리에 들러 4.3 영령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답니다.
올해 4.3 희생자 추념식에는 궂은 날씨 때문에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4.3 희생자 추념식을 TV 중계방송으로 보면서 추념식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쉽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추념식에 가지 못한 대신 4.3 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참배를 드렸습니다. 내년에는 꼭 4.3 평화공원에 가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제주 4.3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제주의 아픈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