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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는 영혼

선택적 삶은 불가능하다


의식은 혼란스러운 곳에 집중되는 성질이 있다. 내부의 혼란스러운 에너지도 예외가 아니다. 이 혼란스러운 에너지는 당신의 주위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것을 일어나게 둬서는 안 된다. 당신은 실제로 거기서 떨어져 나올 힘을 가지고 있다. 내부의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당신은 거기에 따라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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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따라가지 않으면 그것들은 그저 사라져 버린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숲 속의 현자로 불리는 마이클 A. 싱어의 '영혼 사용 설명서'다. '참나(Self)'에 대하여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던 관념들이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자리 잡은 느낌이다. 시중에 각종 에세이나 교양서적으로 나와있는 명상 서적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저자의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는 내면적 수행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었다면, 이 책은 현대인의 에고(ego)에 얽매인 의식의 진실을 파헤치고 억눌린 자아상을 해방시켜주어야 하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참나(Self)'를 무시하고 산다. '참나'는 내부의 나로서 '나를 지켜보는 의식'으로 명상이나 수행과정 또는 꿈속의 나를 생생하고도 객관적으로 말할 때 표현되는 것으로 일상 속에서는 경험하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자아실현을 한다고 했을 때 자아(ego)는 스스로 구축한 정체성이고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의식일 뿐이며 '참나(Self)'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내면소통/ 김주환 저'에서 말하는 '배경자아'가 '참나(Self)'에 해당된다. 김주환교수는 우리의 자아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지금 특정한 경험을 하고 느끼고 있는 '경험 자아'와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기억 자아' 그리고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배경 자아'다. 배경자아의 존재는 고용한 명상이나 자각몽(自覺夢)에서나 가끔 경험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마이클 싱어는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지켜보는 자아(배경자아)'가 왜 필요하며 찾아야 하는 이유를 선명하게 설명한다.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당신의 삶은 '지켜보는 자아'를 돌보지 않은 대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에 흐르는 에너지장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새롭고 신선하다. 저자는 우리가 외부의 에너지를 연구하고 에너지 자원을 매우 중요시하면서도 내부의 에너지를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그는 우리의 삶이 시끄럽고 힘들고 혼란스러운 것은 내면의 에너지를 소홀히 해서 벌어진 일이라 보고 있다.



먼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여러 가지 진동수를 가진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오감은 비교적 진동수가 낮은 물질은 잘 인식하는 반면, 진동수가 높으면서도 옅은 비물질은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도는 지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다.



물리적 법칙에서 작용하는 이 에너지 파동은 계속 움직이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성질이 있다.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대부분의 우주의 기운(에너지장)은 우리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훈련하지 못한 감정 특히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에너지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민감히 반응한다.



우리가 자신의 불안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큰 에너지는 '두려움'이라는 고통이며,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감정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개인마다 두려움의 근원은 각기 다르겠지만 포장된 결과물은 비슷하다. 인정하기 싫고, 무시당하기 싫고, 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일 수도 있고, 사랑을 빼앗기기 싫은 마음 등등 결국 그 모습을 벗겨내면 고통이란 사실로 드러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과 결부된다고 믿기 때문에 저항이 심하다. 저항은 저항할수록 더 강화하는 성질을 띤다. 우리 몸의 에너지 중추는 가슴으로 에너지가 집중되고 분배되는 곳이다. 두려움이라는 에너지는 중추인 가슴으로 들어와 저항에 맞서게 되고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빠져나가게 두지 않는 것은 놔주기 싫고 경험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저항 때문이다. 이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흔적(예민한 기억)은 삼스카라(Samskara)로 각인되어 저장된다.



가슴에서 맴도는 이유는 마음속에서 과거의 경험이 정리되지 않고 남아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삼스카라(Samskara)는 지나가지 못한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들로 프로그램되어 극도의 예민함으로 가슴에 저장되어 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고 종국엔 삶에 지배당한다. 예컨대 같은 상황을 접해도 어떤 사람은 예민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매사 고통의 빌미로 예민해져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다. 우리가 두려움을 피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 언제 어떤 일로 마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내부의 고통을 외면하면 말고 직시하자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명상, 수행)을 거쳐야만 평화롭고 자유롭고 상처 없이 살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래야만 '참나(Self)'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참나(Self)는 안타깝게도 '고통의 층' 너머에 있다. 세상에 놀랍지 않은가. 우리의 자아는 수많은 일상을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습관으로 깊이 훈련해 왔는데 말이다.



진정한 성장은 고통을 대면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일어난다.



수행과정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고 복받치는 울음을 터트렸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직시한 것이다. 가슴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을 몸 밖으로 내보내면서 깨달음의 눈물로 해방을 얻은 것이었다.



영적 현자인 저자는 일상에서 훈련할 수 있는 가르침도 제시한다. 자신만의 두려움이 들어오면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면의식의 수신기는 불편하고 당황스럽고 상처를 주겠지만 그저 하나의 일시적 경험일 뿐이라고 느껴보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흘러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항하지 말고 놔주어야 한다. 경험해 보면 그저 하나의 불편한 느낌일 뿐일지 모른다. 그 속에 말려들거나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경험하는 인식을 알아차리면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그저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택적 삶을 살고 있었다. 불편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은 멀찌감치 두고 가능한 삶만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어떤 일로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지, 일어나기를 바라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애쓰느라고 삶의 한 순간도 허비하지 말라. 당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고 음미하라.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모르겠는가? 이것이 삶을 사는 방법이다. 죽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살라. 왜냐하면 실로 그러하니까.





<상처받지 않는 영혼 / 마이클 A. 싱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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