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나를 보고 자라나니
10년 만에 처음 일해 본 직장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다니.
나를 일터로 이끈 가장 강력한 힘은 돈이었지만 혼자서 매일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서 책 읽는 일도 이제 지쳤다.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또 돈이 들기 마련이었다. 혼자서 시간을 가지는 게 가장 가성비 좋은 것이어서 선택했는데. 것도 더 이상 답이 아니더라.
‘나는 이제 일 할 거니깐.’
언제 시작할지도 모를 일을 앞에 두고 일상을 여백으로 만들었다. 그 공간은 일로 채울 거니깐. 참말 그런 시간을 오래오래 보냈다. 일 년이 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이 다수였다. 혼자서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생각했지만 마음 한 편은 서늘했다.
이제 나도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사사로이 들었을 때 일을 정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십 년의 공백은 어마 무시한 것이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인력 공고를 찾아봤다. 한숨만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직장에서 일하는 걸 상상만 해도 기운 빠졌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엄마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있는 우리 애들은 내게서 뭘 배울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너희들도 할 수 있다며 협박 수준의 말을 하면서도 나는 왜 뛰어들지 못하는 걸까. 부족한 생활비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하자니 일을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던 병원 일이 생각났다.
‘언니는 이 일이 안 어울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일머리가 늘지 않는 니가 안타깝다.‘
일을 하며 인정받아 본 일은 거의 없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동동 거렸다. 그래도 실수는 잦아서 머리 숙일 일이 많았다. 그런 일이 사사로이 일어나는 곳에 다시 가는 일 밖에 도리가 없겠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병원 일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한 번만 더 해보자고.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을까. 이번에도 아니라면 깨끗이 잊자고.
육아 우울감에 사무쳐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얼마나 몸부림쳐 왔던가. 그날들을 보내고 난 뒤부터는 마음이 허약한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들과 관계가 무너져 동굴 속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 시간들은 내게 고독을 머금는 법을 알려주었다. 취업을 해보겠다고 도전하고 배워왔던 나나들. 증명할 수 있는 한 줄의 이력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할 날을 생각하며 나를 길러 왔다. 일터에 간 엄마를 대신해 시간 보내는 법도 아이들에게도 무럭무럭 가르쳐 왔다.
’ 이제 마음의 근육은 준비운동이 다 되었네.‘
그 시간들이 나를 키워내진 않았을까. 이력서에 화려한 경력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부족한 날들을 보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마음 근력을 가진 나로 성장했다.
십 년의 벽 앞에서 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을 갖춘 사람에 대입해 보자니 순간 무기력해졌다.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돌아서면 못하겠다는 곡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돈을 아낀답시고 다시 혼자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일이 두렵다고 무조건 아끼고 지내는 것만이 능사일까. 나는 이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걸까?
세상에 부딪혀 이 두려움을 깨 버리고 나설 것인가.
앞 뒤를 재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다.
소심해서 어떨 때는 선택조차 어려운 나지만 이제라도 변하고 싶었다.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보고 싶었다.
더 이상 정지해 버린 일상을 사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민폐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자란다는 것은 마음의 큰 짐이었다.
다시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눈길도 주고 싶지 않던 예전의 직업에 또 한 번 가 닿기로 했다.
어떤 곤란함이 눈앞에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