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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pr 05. 2024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이 자란다니

“이게 성격인 건지 진짜 adhd인 건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 맞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해 보고 아니면 성격을 바꾸려고요.”     


“성격은 안 바뀌어요.”


“...”


“바꿀 필요도 없고요. 성격대로 살면 돼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멈춰버린 듯했다. 성격이 안 바뀐다는 그 말보다 성격대로 살면 된다는 말이 너무 후련했다. 왠지 모르게 시원했다. 다 뜯어고쳐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살면 된다니.   




  

웬만한 시스템은 디지털화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 종이 차트가 빼곡한 그곳은 첫인상부터 달랐다. 깨끗하고 편리하며 우아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다. 진료실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외관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분은 조금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성격이 내성적인지, 사회 불안증이 있는 경우에도 긴장으로 인한 부주의가 생길 수 있어서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 했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있어도 adhd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어쩌면 저번 병원의 검사에서는 adhd증상에 나를 끼워 맞춘 건지도 몰라서 괜찮았던 생활 태도들도 덧붙여서 답 했다. 나는 가끔 전쟁이 날까, 아이가 다칠까 봐 불안감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불안한 심정에 대해서도 답변했다.  

    

사회 불안증이 있거나 일상의 불안도가 높은 건 아닐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 부분은 크게 높지 않은 것 같다고 운을 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 이 정도의 불안은 다들 안고 살구나’ 싶어서 안심이 됐다.     


2가지 장소 이상에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야 adhd진단을 내릴 수가 있다고 했다. 나는 자꾸 내가 증상에 나를 대입하는 건지도 몰라서 아직도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내 일상생활 수행 정도에 대해 답했다. 내가 말이 길어지면 의사 선생님은 차트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잠시 말을 끊었다. 또 그런 태도를 보면서 배운다. 거절도 할 때는 해야 하구나. 무조건 친절한 게 좋은 건 아니구나.    



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 일단 약을 꾸준히 먹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올게 왔구나 싶었다. 내가 증상을 연기하는 건 아닌지, 내 성격의 불편한 점들을 adhd로 방패 삼아버리는 건 아닌지, 의심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에 나는 신중하고 싶었다. 이 약은 어차피 길게 먹어야 하는 거니깐. 확실하게 바라보고 화끈하게 치료받고 싶었다. 누가 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받거나 약을 먹으라고 해서 그러니깐 시키는 대로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약을 먹기 전과 후의 내 몸과 일상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육아를 하면서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육아 우울감을 오래 앓았다. 나도 모르게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집에 고립되어 살았다. 베이킹에 의지해 지내왔다. 아이 다리가 오자 다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자는 아이를 등에 매달고 빵과 과자를 만들었다. 안 그러면 너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그때는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오랜 날 웅크리고 살았다. 


어쩌다 심리상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사님과 한 달 남짓 만났는데 울고 불고 콧물을 다 짜내는 세월을 보냈더니 내겐 마음의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착하고 순하기만 한 줄 알았던 내가 관계를 끊어내고 싸우고 할 말도 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랬다. 육아 우울감도 어느덧 옅어져서 나는 카페에서 알바도 하고 독서모임 멤버로 책 읽기 생활을 열심히 하기도 했다.   




   

아이가 손톱과 발톱을 물어뜯을 때는 내가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이와 심리상담실을 다니며 놀이치료를 했다. 심리치료 장소로 가는 동안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점점 살가워졌다. 심리상담의 문턱이 낮아진 나는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상담을 받아보길 권했다. 누군가는 내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며 그런 경험담을 말하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을 거라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산다 여기며 고됨을 견디던 시간을 그만뒀다. 그 후로 혼자 해결하는 것이 너무 벅찰 때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했다. 혼자 견딜 때와 도움을 받을 때의 삶은 사뭇 달랐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시간의 마디가 짧아졌다.



분명 혼자서 끙끙 앓고 외롭게 싸우며 동굴 속에 웅크리고 앉아 견뎌야만 하는 시간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도 종종 보내고 있으니깐. 그러나 미칠 것 같을 때, 아니 조금이라도 해볼까 하는 힘이 남아 있을 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끝이 보이지 않고, 남의눈도 신경 쓰일 때가 많겠지만. 이리저리 내게 맞는 답을 찾아 헤매다 보면 한 뼘 더 자랐다는 것을 길의 여정에서 알게 된다.      




자기 고민을 잘 털어놓고, 상담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등 오히려 확실한 대응 수단이 있는 프랑스 사람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프랑스 일하는 여성처럼 중에서-   

  

최근 이 책을 읽고 정신과를 옮기고 다시 약을 먹어 볼 생각을 했다. 내 삶의 불편한 점을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것보다 확실한 대응 수단을 알고 싶었다. 약을 얻기 위한다는 이유로만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보다 예민하고 걱정이 한 움큼인 나라도 인정해 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나고 싶었다. 여럿 선생님과 만나도 나와 어긋난다면 그때는 나를 뜯어서라도 고치려 했다. 누구와도 맞지 않다면 그건 내가 문제인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약을 먹기로 작정한 지금도 이게 맞는 건가 싶다. 그러나 약을 먹었을 때 일상생활 특히나 일을 수행하는 정도가 월등히 높아진 건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뭔가 잠잠해지고, 부산스러움이 덜하다. 다이나믹한 변화는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말로 설명하기 모호 하지만 아무튼 약을 먹기 전 시간보다 약을 먹은 후 시간의 내가 더욱 편안하다.



투약일지를 쓰고 있다. 일상의 또 다른 시간을 짬을 내 기록하기도 한다. 기록을 통해 내 삶을 꼼꼼하고 촘촘히 들여다보면서 나를 알고 싶다. 

좀 더 다른 선택을 하며 변해가는 나를 보고 싶다. 

더욱 편안한 내가 되고 싶다.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말이다.



나를 더 들여다보고 돌보고, 나에게 시간을 주고 기회를 주는 요즘의 내 모습이 참 기특하다.      

내가 점점 자라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마음이 자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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