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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Apr 04. 2024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adhd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년이었다.

매체에서 말하는 adhd증상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지 않았는데 찰나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종종 잊어버렸다.

물건을 자주 잊어버린 일은 어린 날부터 시작되었다.   

  

일터를 자주 옮겼다. 

어느 일자리에서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일머리가 늘지 않는 내가 안 됐다고 했다. 일터에서도 나는 자주 잊었고, 곧잘 부주의했고 말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는 일도 더러 있었다.      


1년 전 정신과를 찾아갔다.

정신머리 없다고 늘 듣고 살던 그 소리가 지긋지긋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아니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던 걸까. 나의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알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에 갔고 내 입으로 말한 주관적인 증상과 내가 체크한 검사지를 토대로 나는 adhd진단을 받았다.      

일을 하지 않는 한가한 날의 일상은 큰 지장이 없었다. 이중 약속을 했을 때는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었고, 아이들의 학교 일을 잊어도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살림을 하며 급하게 서두를 것은 없었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아이가 다치는 일 말고는 급박할 게 없었다. 가끔 ‘정신이 없네’라는 누군가의 소리에 나를 탓하거나 소리 없이 욱하기나 할 뿐, 내가 실패자라고 느낄 정도의 감정을 자주 가지지는 않았으니깐.     

일은 달랐다. 워낙 바쁜 환경에 놓인 직업을 가지기도 했거니와 멀티로 일하는 것이 어려웠다.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그걸 이해해 줄 곳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이해를 해 주는 곳도 있었다. 다만 돈이 작았다. 돈을 얼마를 받느냐가 일의 지속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adhd 약이 일터에서 구세주가 될 줄 알았는데. 그 약을 먹는다고 안개 같은 머릿속이 선명해진다거나 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약은 먹었으니깐’ 하는 안심은 들더라. 그걸로 약이 효과가 있다고 나는 생각 들지 않았다. 

의사를 다시 찾아가서 내가 진짜 adhd가 맞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의사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사직했다는 내 말에 쉬운 일을 해보라고 했다. 가장 명료한 답일지는 모르나 나는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이 많은 내 기질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과 진료를 오래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이 아파서 찾아온 환자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민한 내 부분도 있겠지만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나고 싶었다.      



다른 정신과를 찾아갔다. 나이가 지긋한 그분은 성인이 adhd가 어딨냐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불안증 약을 처방받았다.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진짜 adhd가 맞는지, 내 성격인 건지 알고 싶다 말했다. 진짜 맞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싶었다.   








   



어느 유튜브에서는 급격하게 속도가 빨라진 성과주의 사회인 현시대 탓에 예전에는 이 정도의 adhd의 기질이 있어도 생활 가능 한 것들이 힘겨워진 게 아닌가라며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어놓았다. 

2년 전과 지금 이 시대를 비교해도 너무 다르지 않냐고. 나 역시 그 말이 급격히 공감되었다. 비교적 바쁠 일이 없는 살림을 살 때는 나의 이런 깜빡임과 부주의 한 증상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스케줄러를 이용하고, 알람을 이용해 오븐의 불을 끈다던지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터에서 일을 할 때는 달랐다. 내가 일인 분의 몫을 해내기엔 그곳은 너무 바빴다. 일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누군가 부르면 달려가고, 다시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 작업을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그게 내가 돈을 받는 대가였다. 그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은 그곳에 오래 남았으나 학습에 시간이 걸리는 내가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를 기다려 주기엔 거기도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일이 돌아가야 하니깐. 


약을 증량해서라도 버텨 보려 했는데 부작용이 생겼다. 심장이 평소보다 너무 빨리 뛰었다. 식욕부진도 심해서 살이 빠졌다. 일의 스트레스와 약의 부작용이 겹치는데 그걸 이겨내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버틸 만한 곳에서 버티자는 것이 내가 10년 동안 엄마로 지내면서 깨달은 일 중의 하나였다. 나는 사직을 택했고, 일터에서도 나를 잡지 않았다.   


  

일을 구하기 전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상세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준다는 리뷰를 듣고 그분을 찾아갔다. 세 명 의사의 소견을 토대로 나는 치료를 받을 것인가, 성격이라 받아들이고 환경을 바꿀 것인가 결정할 것이라고. 의사 한 분의 말만 듣기에는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이 의사분도 예전 의사처럼 몇 마디 말로 진료하고, 걱정이 많은 환자라고 나를 탓할 것인가. 어떤 분일까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나를 이해는 못하더라도 인정해 줄 누구 한 사람은 있지 않을까 하고. 


치료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의사분과 협력해 나 자신을 도울 것인지 다시 선택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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