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화장실이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밤이면 무서워 동생을 깨워 화장실을 다녀왔다.
어떤 집에 살 때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다.
거기는 재래식이었는데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의 행방이 묘연할 때 그곳에 빠진 게 아닌가 의심했다.
다 커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독한 냄새에 고개를 내 젓지만 내 어린 날엔 아주 친숙한 곳이었다.
우리 집엔 세면기도 없었다.
다른 친구 집에 가면 서서 얼굴도 씻고 손도 씻는 모양이던데.
나는 쭈그려 앉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추운 겨울에는 물을 데워 차가운 물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따뜻한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그때는 씻는 게 너무 싫었다.
불편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싫었던 것은 내 사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나처럼 앉아서 씻고, 화장실이 집과 멀리 떨어진 친구는 찾아보는 게 어려웠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그건 내게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엄마는 무채색이 배경인 집에 살면서 부지런히 화초를 가꾸셨다.
세멘 바닥에 화초를 놓고서는
바가지로 물을 퍼 한 번씩 끼얹어 주었다.
무채색의 바닥이 싱그러움으로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날의 풍경들을 지금까지 눈에 담고 살았다.
나는 너무 단조로운 집에서만 어린 시절을 보내서였는지
아름다운 것들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내 방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집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내 방은 원하는 것으로 도배를 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전달은 나의 엄마가 했지만.
분홍색 꽃으로 도배된 내 방을 갖고서 한동안 마음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지 모른다.
스물다섯. 내 인생에 처음 가져본 화사한 방이었다.
© eddrobertson, 출처 Unsplash
결핍의 순간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선물을 얻었다.
내 일상의 지겨운 순간들을 가꾸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일상이 지 멋대로 흐를 때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기 시작한다.
꽃과 식물 그리고 음악.
그것들은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꽃 한 단 5000원-
꽃을 만 원만 사는 것도 말 꺼내기가 불편한데 5000원이나 깎아서 심지어 이름표까지 붙여놓으셨다.
나는 시장에서 5000원어치 신문에 둘둘 말려진 꽃을 사거나 조그만 값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가게에 가서 꽃을 산다.
그렇게 일주일 남짓 5000원이라는 돈에 희망과 기쁨을 담아 집을 장식한다.
집의 여기저기에는 식물들도 졸졸 하다.
어릴 때부터 작은 화분을 키워온 엄마를 보고 자라서일까.
내게 식물이 없는 삶은 생각하기 어렵다.
심지어 아이가 일주일 넘게 입원 생활을 할 때도 당장 생각났던 것은 화분이었다.
늦은 밤이면 그 애와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원 생활을 버텼다.
사직하고 내게 위안을 준 건 뜻밖에도 음악이다.
눈물을 질질 짜며 퇴근하던 그날, 우연히 들었던 지오디의 '길'이라는 노래는 내 마음과 같더라.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모르겠는 내 마음을 노래 가사로 들으니 왠지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온 세상이 들려주는 화답같이 여겨졌다.
나만 조용한 것 같은 주말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음악을 듣는다.
혼자만 놓인 것 같은 세상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는
허전한 내 마음을 감싸 안는다.
지금 내 곁에는 봄날을 닮은 노란 프리지아가 자리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피아노 선율의 재즈를 듣는다.
어지러운 마음은 글을 쓰며 잠재우기 시작한다.
눈과 귀가 귀해졌다.
내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한껏 물이 오른 꽃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