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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Jun 29. 2024

일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질투 나던 날


"미정샘, 이거 잘 부탁해."


바로 옆자리에 내가 있었는데. 심지어 내가 선배였는데. 항상 신뢰를 받는 것도 주목을 받는 것도 그 애 몫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는데. 인정받는 것은 언제나 그 애였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그 애가 칭찬받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자주 그랬다. 일 잘하는 사람과 비교되거나 내가 더 오래 일했는데도 인정받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내가 저 사람이 되었음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했다.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센스도 없거니와 손이 빠른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소처럼 일할 뿐이었으니깐. 



일 잘하는 사람은 남도 편하고 나도 편하게 해 준다는데. 대체 일을 잘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일 년이라는 혼자만의 안식일을 보내는 동안 진로에 관한 책 이후로 가장 많이 읽어본 책은 일 잘하는 것에 관한 거였다. 얼마나 일을 잘하고 싶었으면 '일 잘한다'라는 말만 들어 있으면 도서관 서가에서 잽싸게 책을 낚아 채 읽었다. 애가 닳던 주제여서 앉은 자리에서 글이 술술 잘도 익히더라. 




항상 구멍이 많았던 나는 잘 까먹고, 잘 놓치고, 잘 당황하고, 멘탈이 부서지기도 하고 그랬다. 

일을 대하는 데 있어 침착함이나 평정심이나 당당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잘하는 것 중의 몇 가지는 친절과 예의, 진심이었다. 워낙 어렵고 힘들게 유년을 보냈던지라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무시당하던 날들을 자주 보냈던지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잘하지 못한다면 진심을 다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오래 살았던지라 빠른 일 처리 속도보다는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내 속에 녹혀져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했는데도 일로써 주목받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세상에는 센스가 넘치고 일 잘하는 이들이 많더라. 중요한 일은 당연한 듯 그들에게 주어진다. 나도 한 번쯤 그런 주역이 되고도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 여전히 질투가 난다. 심사가 배배 꼬이려는 것을 마음으로 다독인다. 



그러다 책 속에 문장 하나가 내 마음을 녹였다. 

갑자기 모든 어려움이 이 문장 하나로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워런 버핏은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사업을 함께할 만큼 믿음직한 사람을 결정할 때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그는 진실성, 지성, 주도력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면서, 이 중에서도 진실성이 없다면 다른 두 특성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소 노력의 법칙 중에서-





일을 하며 욕 먹었던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진실했기 때문이었다. 아무 때나 진실한 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어느 면에서는 다른 이들은 아니라 해도 이 부분은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손이 느릴 때가 있었고 삥 둘러 가며 일해야 할 때도 있었다. 다만 진실했다. 또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몇몇 직장을 거쳐 나갔지만 인정받은 일이 몇 없었다.



디저트 만든 것을 파는 일을 했을 때는 이런 진심을 사장님이 알아봐 주셨다.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던 나를 성실하고 열정이 넘친다는 이유만으로 믿어주시던 사장님이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 그런 믿음을 감히 잘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은인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믿고 지지해 주며 디저트를 팔아볼 기회를 주신 그 하나의 경험이 내겐 큰 일로 남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한 분, 한 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만나며 짧은 순간이지만 최선을 다한다. 전체적인 일의 맥락을 파악하기까지는 센스 있게 일 하는것도 내 역량이 아직 부족하지만, 일의 본질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분들이 나를 만나서 그 짧은 순간 긴장을 조금은 내려놓고 약간의 신선한 경험으로 남으셨기를. 그분들에게 예의와 친절을 다해서 내가 대접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드시기를. 때론 이런 내 생각과 전혀 엇나가는 태도로 일할때도  생기지만, 화 날 때도 언짢을 때도 많지만 자주 그 분들에게 진심을 다하기를. 진실하기를.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한 뒤로는 질투가 배어 나오는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이 살짝 옅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인정으로 나는 더 나은 사람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불리지 못하더라도 내가 어떤 태도로 일에 임하는지 나 자신은 안다. 


적어도 나는 내게 진실하고 싶다. 나 자신이 나를 괜찮을 사람으로 보길 바란다. 우월한 감정을 느끼자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참 괜찮은 태도로 일을 했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정히 대하는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일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남에게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에게 좌우되고 싶다.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내가 이끌고 싶다. 



그러니 질투도 역시나 개나 줘 버리련다. 

계속 개에게 주려고 해서 미안하지만. 












© negakha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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