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를 읽고
두 남자가 유성룡과 정철을 두고 싸운다. 누가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했는가.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는 재미없는 싸움을 담고 있다. 저자는 두 남자 중 하나인 오항녕 역사학자다. 내용은 이렇다. 1589년, 기축년에 큰 옥사가 있었다. 서인이었다가 동인으로 탈당한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다하여 시작되었다. 연루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중엔 이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도 심문을 당하다 죽었다. 이 때, 추국 책임자는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두 역사학자는 이를 놓고 싸운다. 저자 오항녕은 ‘유성롱’이라 하고, 상대 역사학자 이덕일은 ‘정철’이라 한다.
역사학자가 쓴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정말 누구일까. 그러나 초점이 여기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고, 차이는 어디서 왔는가. 저자가 차이를 밝히는 과정이 놀랍다. 상대가 반박 근거로 제시한 사료를 하나씩 검토하며, 자신의 주장이 왜 옳은지 논리적으로 풀어간다. 역사학자는 부지런하다. 게으르면 할 수 없다. 그는 반전을 꾀했다. 또 다른 책임자가 있을 가능성. 마지막 장에서 추국청을 서술한 이유다. 아, 역사는 이렇게 봐야하는 것인가. 의심을 거듭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책임자는 유성룡이다. 아니면, 이양원이다. 이발의 노모와 아들이 죽은 시기는 선조 24년. 정철은 추국 책임자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논리적이다. 제시한 자료도 설득력 있다. 그러나 추국 책임자가 유성룡인지 정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상하다. 열심히 증거를 찾아 자신의 주장이 맞음을 확인하였는데, 중요하지 않다니. 그는 숨은 책임자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추국청을 살핀다. 나무를 보았으면 숲도 봐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야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추국청은 한두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의 제도이자 조직이었다. 조직 가장 으뜸엔 왕이 있었다.
깨달음 하나. 추국청의 조건은 어느 한 사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노모와 어린 아들이 죽었다 하여 한 사람만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그러한 조건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사건을 조작할 수 없다. 당쟁론을 통해 기축옥사를 볼 수 없는 이유다. 저자는 비난해야 할 다른 책임자를 제시한다. 바로 선조다. 추국청은 조사 결과를 국왕에게 보고하여 처결을 논의하는 조직이었다. 기축옥사는 전 과정에 걸쳐 정승, 사헌부와 사간원이 참여하였고, 국왕의 재가를 받아가며 이루어졌다. 선조는 노모와 아들의 죽음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놀라운 반전이다. 생각도 못한 일이다. 정말 숲을 보면 진실은 더 잘 보이는 걸까.
모든 사건에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우연이 함께 들어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다. 세 요소를 다 살펴야 한다. 그러나 상대 이덕일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서인 정철이 위관을 맡아 동인을 죽였다 했다. 옥사에 처음부터 사람의 의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정철이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니. 서인과 동인의 세력 다툼이 심했구나. 이는 사건에서 ‘의지’만 따졌기 때문에 생겨난다. 저자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은 왜곡을 낳을 수 있다고.
깨달음 둘. 사건은 지금도 일어난다. 조건, 의지, 우연 모두 따져보는 일은 역사 탐구에서만 중요한 건 아니다. 이 세 요소를 모두 살피지 않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서도 진실을 볼 수 없다. 이를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것저것 따져보는 일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게을러서. 결론 혹은 진실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 판단을 쉽게 내리며 살았던 건 아닐까.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실과 진실이 왜곡되었을까. 왜곡된 사실로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갖게 되었을까. 모든 사건에 탐구정신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도, 당파심의 기록도 아니라고. 어떤 사건이든 진실의 영역이 있고, 이를 찾으려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고. 요즘 뜨거운 화제인 국정교과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그에 따른 해석이 다름은 물론이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다. 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국정교과서는 이를 부정하는 일이다. 국가가 옳다고 믿는 사건과 역사적 해석을 강요하는 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안 된다고 하며 거리로 나가 싸운다.
깨달음 셋. 2년 전 사건을 떠올렸다. 2014년 4월, 여객선이 침몰했고, 구조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많은 고등학생이 돌아오지 못했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사고였다. 그 후,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진실, 꼭 찾아야만 하는 걸까. 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찾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플까.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그럼에도 진실은 찾아야 하는 거라고. 당장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역사는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기억한다. 저자가 말했듯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다.
두 남자가 싸우는 동안 내가 얻은 건 세 가지다. 하나, 숲을 보지 않고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난 데 어떤 상황과 조건이 있었는지, 사람은 거기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없었던 어떤 우연이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둘, 그 동안 나는 게을렀다. 어떤 사건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많은 선입견과 편견이 있는지 모른다.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살면서 이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다. 사건에는 분명 진실이 있고, 이를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 이를 그저 지켜보는 방관자가 될 수는 없다.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도, 지나면 역사가 된다.
그 동안 역사를 재미없게 공부했다. 내 역사공부에 탐구는 없고 암기만 있었다. 두 남자의 싸움이 재미없다고 느낀 건, 역사학자의 탐구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모든 사건에 저자와 같은 탐구정신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진실에 다가서는 일이라 해도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그러나 쉽게 판단내리지 않겠다는 마음은 약간의 조심성만 있으면 된다. 어떤 사건에 스스로 믿고 싶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은지. 이에 따른 선입견은 없는지. 이러한 의심을 해보는 일은 많은 시간이 필요 하지 않다. 의심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은 진실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