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인다. 생각한다. 상대방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 혹은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게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한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위로가 필요하다면 해준다. 그 위로에 늘 100%의 진심이 담겨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어떤 해결책을 바란다면 조금 물러선다.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당신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다고 하지만, 이건 아마 당신의 해결책은 아닐 거라고 말한다. 물론, 어떤 해결을 바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대개 답답해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혼자서 감당하려니 버거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방법은 없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 밖에는. 숨기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답답하고 외롭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견뎌야 한다. 내가 안고 있는 고민, 상황,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하고, 답이 보일 때도 있고, 몸이 반응하기도 한다. 치열한 싸움(?)끝에 고민에서 벗어나면 알게 된다.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이는 사실 매번 나 스스로 되뇌이는 말이다. 내가 안고 있는 고민과 책임들로부터 도망치지 말자고. 나는 남들의 고민을 들어줄지언정 정작 내 고민은 아주 가까운 그 누구와도 잘 나누지 않는다. 무거운 고민일수록 더욱 더 꺼내놓지 않는다. 남들에게 나를 잘 드러내지 않으므로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때문이기도 하고, 고민을 이야기한다고 응어리진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실,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때문이다. 신뢰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일을 못 견디므로 늘 조심하지만, 타인을 믿는 일에 대해선 엄격하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 대해 차갑다고 말하며 서운해 하기도 한다. 나에 대한 벽을 느낀 어떤 인연은 멀어지기도 했다.
나도 안다. 고민을 털어놔서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그 행위 자체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것임을. 마음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면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는 것을. 고민을 혼자 감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누군가 나를 안쓰러워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마음이 너무 차가워져서 동사(凍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성격으로 인한 내 팔자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해 지면 나 또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고민이 많을 땐 책을 찾는다. 내 고민을 왠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책. 어떤 답을 주진 못하지만 마음을 토닥토닥 해줄 거 같은 책. 이렇게 적고 보니 책을 찾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과 근본적으론 별반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책을 검색하고 서점과 도서관을 서성인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게 가장 편하니까. 책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심지어 아주 오래 전에 살았고 아주 유명했던 그 누군가를 만나 아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와 다른 시간과 환경 속에서 살았고 살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서 나와 비슷한 그 무엇을 발견했을 때, 신기함을 느끼는 동시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어떤 감정이 일렁일 땐 책을 덮으면 그만이고, 그러다 다시 마음이 정리되면 책을 펼쳐 언제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고민이 많을 때 가장 좋은 건 산책과 사색, 글쓰기다. 그보다 더 좋은 게 있다면 고민을 하지 않는 거 아닐까. 고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고민 없이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