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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Apr 04. 2023

먹어 본 최악의 명절음식?

먹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맛이 없을 수 없는 ‘명절’음식인데, 그 중에서 ‘최악’을 꼽아 이야기를 풀어가려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명절에 먹는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평범한 김치부침개도 왠지 명절에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 인걸까. 그렇다. 기분 탓. 평소에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도 어떤 기분으로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될 수 있다. 바삭하면 바삭한 대로, 식어서 눅눅해지면 눅눅한 대로 맛있는 명절음식의 대표 격인 ‘전’을 좋아하는 나로선, 평소에 귀찮아서 혹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오로지 명절에만 그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나로선, 도저히 최악의 명절음식을 생각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 먹은 명절음식이 존재할 뿐. 


명절이 매우 좋았던 때가 있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 두루 앉아 음식을 만들고, 도를 지나치지 않은 가벼운 농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상황이 좋았다. 공익 광고에나 나올 법한 마당이 있는 2층 집을 가진 여느 행복한 모습의 중산층 가정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예술교육 연수 때 받았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명절’이라고 답할 정도였으니 내가 명절에 대해 얼마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짐작이 갈 만하다. 내 답을 들은 주변 동기들은 대체로 놀라며 특이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해마다 명절엔 가족들 간의 불화 기사가 쏟아져 나왔으니까. 나도 이제는 그런 기사들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해가 갈수록 내 나이에 맞는 책임이 부여되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으면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안부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한다. 안부와 잔소리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우리들은 불화라는 불을 피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라도 쪽에 시댁을 둔 둘째 이모 덕에 이번 설에 육전을 많이 먹었다. 지난 가을 명절에 처음 먹어 봤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육전이란 명절음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친가나 외가에서는 단 한 번도 차례 상에 육전을 올린 적이 없었기에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먹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고기와 밀가루, 계란, 기름의 환상의 조합이라니. 원래는 버섯전과 배추 전을 가장 좋아했는데, 이제부터 육전만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명절음식은 최악이었다. 서른을 앞둔 내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덧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책임 질 일이 많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특히,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나는 이미 결혼을-최소한 연애라도-했어야 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어야 했다. 연애나 결혼, 취직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맞는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 나는 죄인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육전’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도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그 ‘책임들’에 내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이 분명히 ‘죄’는 아님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조금 더 유연하게, 능구렁이처럼 그 상황을 넘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먹은 육전은 너무도 맛있었지만 최악의 명절음식이었다.


(*해당 글은 서른이 되기 전에 작성한 글로 지금은 서른을 훌쩍 넘었습니다...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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