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니? 죽어가는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싶지만, 조금의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해 볼 게. 물론 난 화초로 살아본 적이 없어. 우리의 삶이 같을 수도 없겠지. 그렇지만 아주 만약, ‘혼’이란 게 실재하고 세상 모든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거라면, 내가 하는 이 말이 어쩌면 너에게 닿을 수도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어. 인간으로 살면서 깨달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해.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어.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고, 그저 호기심이었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죽는다는 데,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어린 아이의 호기심. 그 호기심은 금방 해소되었어. 교회에 다니시는 어른들이 그랬거든.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단다. 그곳엔 천국과 지옥이 있단다. 천국은 아주 좋은 곳이고, 지옥은 아주 나쁜 곳이지. 천국에 가려면 교회에 나와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단다. 그래서 어릴 땐 새벽 기도를 나갈 만큼 열심히 다녔어. 욕도 안하고, 오락실도 안가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어. 그런데 사실 난,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천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천국에 가고 싶었으니까. 교회 선생님이 그랬거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사는 늘 내 옆에 있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한테 보고 한다고.
어느 날 나는 의심이 생겼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지. 그때부터 나는 사후세계는 없고 천국과 지옥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하게 됐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게 너무 두렵고 무서우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은 신이란 존재를 만들고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 교회는 당연히 나가지 않았고, 이 세상에 신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지. 나는 죽음에 대해 천국과 지옥 대신 다른 생각들로 채우기 시작했어.
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표현 중에 ‘돌아가다’는 표현이 있어. 왔던 데로 다시 돌아 가다는 뜻이야. 죽는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우주 어딘 가로부터 어쩌다 만들어진 우리가, 다시 우주 어딘가로 어쩌다 다시 돌아가는 것. 가끔은 죽음과 가까이 있는 내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곤 해.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을 말이지. 틱. TV전원이 꺼지듯 마지막 의식이 꺼지고, 의식과 상관없는 내 몸의 세포들마저 마지막 할 일을 끝내면, 나는 부서지겠지. 부서지고 부서져 답답한 어떤 함에 보관되거나, 땅에 묻히거나,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 이곳저곳에 뿌려지겠지. 오래오래 어떤 형태로 여기저기 남아 있다가 지구마저 없어지면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 그렇게 우주로 돌아가는 것. 죽는다는 건 그런 거라 생각해.
사실 우린 태어난 이유가 없어. 그저 어쩌다 태어난 거야. 그러니 살아가야 할 이유도 딱히 없지. 삶이란 게 원래 그렇게 이유 없고 허무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허무함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기도 해. 원래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얀 백지 상태였으니까, 그 위에 하나씩 각자의 색깔로 칠하면 되거든. 굳이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삶에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랄까. 그러니 살아가야 할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수만큼 많다고 볼 수 있지. 물론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살아갈 이유도 만들지 못한 채 빈껍데기로 살아가는 인간도 많아. 허무함과 무력감, 권태로움.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런 감정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있어서 인간은 이 만큼 발전할 수 있었어. 끊임없이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냈던 사람들 덕분에 문명이 생겨나고, 문화와 예술 그리고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지.
나도 그랬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삶이 덧없다고 느꼈지. 어차피 언젠가 죽을 텐데 왜 살아야 할까. 나는, 우리 모두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나한테 그런 질문은 일상에 깊이 박혀 잘 빠져 나오지 못했지. 그러다 철학을 알게 되었고 나는 조금 덜 외로워졌어.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시간도 많았던 과거의 어떤 사람들이 삶에 대해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갖고, 고민을 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그들은 그런 생각들을 아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학문으로 만들었어. 너무도 흥미로웠지. 그런데 마음과 달리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어. 요즘 우리 인간들은 그런 게 쓸데없다고 생각하거든.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어.
나에게 철학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야. 민감한 성격 탓에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나는 철학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하지.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심리공부를 하는데, 이것 또한 내가 사는 이유 중 하나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심리공부를 했어. 다른 사람보다도 우선 나를 좀 더 깊이 분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 그러다보면 또 다른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도 해.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심리학 박사님이 있는데, 대학교를 퇴직하고 지금은 상담센터와 워크샵을 운영하고 계셔. 이 워크샵에 참여하는 것 또한 내 목표야. 죽어가는 너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함께 워크샵에 참여하고 이 분을 만나게 해주었을 거야.
철학학교에 입학하거나 심리학 워크샵에 참여하는, 이런 것들도 인간들에겐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저무는 해를 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하기 위해.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예술을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가을의 단풍잎을 보기 위해. 인간이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아. 무한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어. 사소한 그 무엇이라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무수히 만들어 낼 수 있거든. 많은 사람이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만 사실 정답도 없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난 각자의 삶에 각자의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부여하면 그만이니까.
이런 자유를 가진 인간들이 어쩌면 부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부러워 할 필요 없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우리 인간들은 그 책임을 무겁게 느낄 때가 많거든.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어. 사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느끼거나,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을 때지. 우리들에겐 때때로 그런 순간이 오기도 해. 여긴 좀 치열하거든. 각자 다른 목적으로 다르게 살다보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그렇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아파하다가 죽어가기도 하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 묻고, 그걸 만들어 내는 게 또 인간이야. 인간은 참 복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