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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berrina May 03. 2024

13. 턴아웃과 무릎(2)

발레를 할 때 무릎은 어떻게 움직일까? 우선 무릎을 굽혔다 펼 수 있다. 무릎을 굽히는 동작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플리에(plie)로, 다양한 스텝을 연결해 주고 점프를 위한 도움 닿기가 된다. 발을 지면에 붙인 채로 무릎을 굽히는 것이 플리에라면, 발을 지면에서 떨어뜨린 상태에서는 쿠드피에(cou-de-pied), 파세(passe), 에티튜드(attitude) 등이 있다.

반대로 무릎을 펴는 것은 대부분의 발레 동작에서 기본에 해당한다. 스텝을 연결하거나 점프 도움 닿기를 위해 플리에를 하는 상황, 혹은 몇몇 특별한 동작에서 무릎을 굽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레를 하는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항상 무릎을 곧게 펴고 있어야 한다. 무릎을 폈을 때 쏙 들어가는 반장슬(=전반슬, 과신전, genu recurvatum, back knee)이 발레를 위한 덕목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무릎이 살짝 튀어나온 경우 발레를 하는 데 있어서 큰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부렸다 펴는 것 외에 또 어떻게 무릎을 움직일 수 있을까?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종아리 부분을 턴아웃 방향 혹은 턴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 즉 몸의 수직축에 대해 회전 운동이 가능하다. 무릎을 굽힌 채로 종아리 부분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동작이 무릎을 편 채로 완성되는 발레에서 이런 움직임이 턴아웃에 크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턴아웃을 위해 무릎의 움직임을 의식적으로 특정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하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무릎 관절을 살펴보자. 무릎관절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관절이다. 무릎관절면은 크게 세 부위로 나뉜다.
-가쪽넙다리정강관절 (Lateral femorotibial articulation)
-안쪽넙다리정강관절 (Medial femorotibial articulation)
-넙다리무릎관절 (Femoropatellar articulation)


위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넙다리뼈와 정강뼈가 서로 닿는 면은 안쪽과 가쪽 두 면으로 나뉘며, 안쪽 관절면이 가쪽보다 더 넓다. 두 관절면의 면적 차이로 인해 무릎을 펼 때 종아리 부분이 허벅지에 대해 상대적으로 외회전 되는데, 이를 Screw home mechanism이라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gMbzbrc1DmM


위 영상(1:30-3:05)에서 뼈 모형을 이용해서 screw home mechanism이 일어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쪽 관절면이 더 넓고 길기 때문에, 무릎이 다 펴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가쪽 관절면은 이동이 끝났지만 안쪽 관절면은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다. 무릎을 다 펴기 직전, 20~30도 정도 남았을 때부터는 안쪽 관절면에서만 이동이 계속되면서 넙다리뼈와 정강뼈가 서로 비틀리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무릎을 굽힐 때는 먼저 오금근(popliteus muscle)이 수축하면서 넙다리뼈가 상대적으로 외회전 하게 된다. 이러한 돌림운동은 무릎을 굽혔다 펼 때마다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무릎을 돌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성실하게 노력해서, 힘들지만 바들바들 떨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적인 욕구 없이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걸까? 무릎을 폈을 때 넙다리뼈와 정강뼈가 서로 비틀리면서 얻게 되는 이익이 있다. 바로 "에너지 절약"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대(초록색 선)가 붙어있는 자리는 그대로인데, 뼈가 서로 비틀리면서 인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그로 인해 인대의 길이가 살짝 길어지면서 더 단단해진다. 마치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더 단단해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무릎을 폈을 때 단단해진 인대가 넙다리뼈와 정강뼈를 한 덩어리로서 강하게 고정시키는데, 이를 무릎의 수동 잠금(lock)이라고 한다. 직립자세로 서 있을 때, 이런 locking 없이 순수하게 근육 힘으로만 다리를 쭉 편 자세를 유지하려면 훨씬 더 에너지가 많이 든다. 무릎의 locking은 마치 단단한 무릎보호대나 부목을 대주는 것과 같은 효과로서, 근육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직립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Screw home mechanism으로 인해 종아리 부분이 얼마나 턴아웃 방향으로 돌아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며, 5~15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안쪽과 가쪽 관절면의 크기 차이, 무릎 주변 인대의 유연성 차이, 넙다리뼈와 정강뼈가 맞닿은 각도 자체의 차이 등등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고, 그 각도가 클수록 턴아웃에 유리하다.


이 Screw home mechanism이 너무 강하게 일어나는 경우 무릎이 뒤로 쏙 들어가는 반장슬(back knee)이 발생하게 된다. 인대가 유연한 경우, 무릎이 너무 강하게 펴지면서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발레 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말하는 X가 다리이며, 뒤로 들어간 무릎에서부터 앞으로 튀어나온 발등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발레 동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어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의학에서 말하는 X자 다리는 이와는 다른 개념으로,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면을 향해 섰을 때 다리 모양이 X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다리의 기형은 모두 무릎 주변 뼈의 변형 또는 주변 연부조직의 느슨함 때문에 발생하며,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다. 심한 관절염, 기능 이상을 일으킬 정도라면 수술을 하기도 한다. 발레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적당한 반장슬(back knee) 일 것이다.



다음으로, 무릎의 인대를 살펴보자. 무릎의 인대들은 무릎뼈와 넙다리뼈, 정강뼈와 종아리뼈를 모두 연결해서 무릎이 탈구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각 뼈들 사이에 인대들이 무릎관절의 주변부에서부터 안쪽에 이르기까지 강력테이프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무릎을 펴고 관절이 맞물린 상태에서는 팽팽해진 인대에 의해 넙다리뼈에서부터 정강뼈까지 한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무릎에서 수직축을 중심으로 한 회전운동은 불가능하다.


즉 일단 무릎을 펴고 있는 상태라면, 턴아웃을 위해 내가 의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고관절의 근육들밖에 없는 것이다. 무릎을 편 채로 바뜨망 탄듀(Battement Tendu)를 하는데, "허벅지를 바깥으로 돌리세요, 무릎을 바깥으로 돌리세요, 종아리를 바깥으로 돌리세요"라고 지적받는다면, 이것은 결국 고관절 부위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무릎 부위를 내 의지로 턴아웃 시킬 수 있는 경우는 무릎을 구부렸을 때뿐이다. 플리에, 쿠드피에, 파세, 애티튜드와 같이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는 인대가 느슨해지기 때문에 종아리 부위를 턴아웃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 무릎을 30도 정도 굽혔을 때는 가쪽으로 32도, 무릎을 90도로 더 많이 굽혔을 때는 40도까지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턴아웃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고관절에서의 외회전이다. 아무리 종아리 부위를 바깥으로 돌린다 한들, 고관절 부위가 닫혀있다면 전체적인 라인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무릎 관절에서는 턴아웃을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릎 위아래의 넙다리뼈와 정강뼈가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는 내가 바꿀 수 없고, 무릎 관절면의 생김새에 따른 screw home mechanism도 얼마나 큰 각도로 일어날지 내가 정할 수 없다. 무릎 주변부에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부분에 의해 턴아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관절 부위에서는 턴아웃을 위해 근육 단련이나 인대 스트레칭을 해볼 수 있지만, 무릎 부위는 그럴만한 건덕지도 없다.



하지만 무릎 아래의 턴아웃이 어쩌면 심미적 완성도에는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무리 고관절 부위에서 턴아웃이 잘 된다 해도 무릎 아래가 안쪽으로 말려있으면 종아리 바깥쪽의 튀어나온 부위가 자주 노출되면서 눈에 거슬리고, 발끝 각도가 180도가 되지 않아 동작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반면 고관절 부위에서 약간 턴아웃이 덜 되더라도 무릎 아래가 바깥으로 열려있으면 결국 발끝의 라인이 아름답게 정리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훨씬 눈에 덜 거슬리게 된다. 실제로 전공생 시절에 동료들 중 고관절 부위가 많이 열려있지 않아 개구리 자세 스트레칭은 잘 안 돼도, 발끝 라인이 180도를 너끈하게 향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이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반대로 나는 개구리 자세 스트레칭은 편안하게 잘 됐지만, 무릎 아래쪽의 턴아웃이 잘 안 되는 케이스였다.



발레리나 중에는 하늘이 내려준 육체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정열과 동경의 시련을 겪게 되는 육체를 가진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벌어지고, 발레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12세에도 처음 배우는 1번 포지션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반면, 정확한 포지션을 하고 있는데도 무릎의 위치가 안쪽을 향하고 있고, 조금은 기가 빠진 느낌으로 완전히 골반이 안으로 들어가 버린 사람도 있다.            -[발레를 사랑한 의사 선생님의 몸을 살리는 조언] p.49



위의 책 인용구절은 정말 맞는 말이다. 얼마 전 턴아웃 연습을 위해 구매한 턴아웃보드에서 열심히 1번 자세를 취했지만 내 발끝 각도는 겨우 100도 남짓이었다. 반면 뻣뻣하기 그지없고 발레 근처에도 안 가본 남편에게 심심풀이로 턴아웃 보드를 권했는데, 나보다 훨씬 더 발끝 각도가 잘 벌어졌다. 넙다리뼈와 정강뼈의 뒤틀림을 확인하기 위해 앞선 글에서 설명한 Craig test와 tibial torsion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비록 전문적인 기구가 없어서 정확한 각도를 측정하지는 못했지만, 확연히 남편이 나보다 정강뼈가 많이 뒤틀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뼈 자체가 타고났다면 조금만 훈련하면 나보다 훨씬 쉽게 턴아웃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턴아웃이 잘 되기 위해서는 골반부터 무릎 아래까지 뼈 구조 자체를 타고나야 하고, 그나마 해볼 수 있는 노력은 심부외회전근과 내전근 단련, 고관절 주변 인대 스트레칭 정도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뼈의 타고난 각도를 이겨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발레는 이런 모든 조건을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걸까? 비록 타고난 것이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망연자실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정확하게 스스로의 상태를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인의 몫이다.


내가 가진 조건에서 최대한의 턴아웃을 끌어내기 위해 정확한 근육을 단련하고 춤춘다면 그만의 매력을 선보일 수 있다. 해부학적 구조가 타고나지 않은 경우, 턴아웃을 위한 근육을 더욱 많이 사용함으로써 비록 발끝의 각도는 살짝 아쉬울지라도 전체적으로 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나 탄력이 훨씬 좋을 수 있다. (전문 용어로 "짱짱하다"라고 표현하는 그 느낌이다. 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C-yNdbXuQKg


위 영상에서는 Natalia Osipova, Marianela Nunez, Svetlana Zakharova 세 명의 발레리나의 돈키호테 캐스터네츠 바리에이션을 보여준다. Zakharova는 무결점에 가까운 턴아웃을 보여주지만 전체적인 춤의 긴장감이나 탄탄함은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반면 Osipova의 경우 O다리와 함께 무릎 방향이 살짝 안쪽을 보고 있지만 훨씬 더 탄탄한 춤을 보여준다. 물론 위의 세명은 현존하는 최고의 발레리나들로, 감히 내가 평가하고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 또한 캐스터네츠 솔로가 워낙 Osipova에게 딱 맞는 작품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림 같은 턴아웃 조건을 가진 것이 모든 순간과 모든 상황에서 "절대 선"이 아닐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넙다리뼈와 정강뼈의 비틀림도, 반장슬(back knee)도 부럽지만, 너무 심한 경우 통증을 유발하거나 관절의 불안정성을 일으키고 관절을 빠르게 닳게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도 과유불급인 것이다.



그저 내가 타고나지 못한 조건들을 부러워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일정 부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는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나만의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안다면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지, 그에 비추어 내 상태는 어떤지를 정확히 알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과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은 어쩌면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결 자유롭게 노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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