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서 있을 때 턴아웃에 사용되던 근육들이 다리를 앞으로 들면서 더 이상 턴아웃 근육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나마 턴아웃 근육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근육은 대퇴방형근이나, 이 또한 '근육 작용의 역전' 현상으로 턴아웃에 동원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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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드방으로 높이 다리를 들 때 턴아웃을 유지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다리를 앞으로 드는데 사용되는 근육을 고관절 굴곡근, hip flexor라고 한다. 문헌에 따라 일차적/이차적 굽힘근의 종류와 분류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퇴근막장근, 대퇴직근, 봉공근, 장요근, 내전근, 중둔근 전방섬유, 소둔근 전방섬유]가 고관절 굽힘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고관절의 앞쪽에 붙어있다.
이 중 내전근과 봉공근은 턴아웃에 도움을 주는 근육들이다. 이 근육을 주로 이용하면 턴아웃을 유지하면서 다리를 앞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다리 높이가 60~70˚를 넘어가면 더 이상 고관절 굴곡근으로서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대퇴직근 역시 60~70˚ 이상에서는 굴곡근으로서의 역할이 미미해지고, 무릎을 펴는데 주로 기능하게 된다. 다리를 앞으로 90˚ 이상 들어 올릴 때까지 굴곡근으로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장요근과 대퇴근막장근, 중둔근 전방 섬유, 소둔근 전방 섬유이다.
이와 관련해서 자료에 따라 설명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책에서는 90도 이상 다리를 들 때 작용할 수 있는 근육은 장요근이 유일하다고 하고, 또 다른 책에서는 대퇴근막장근도 120도까지 다리를 드는데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중둔근과 소둔근의 전방 섬유의 경우 '90도 이상 다리를 드는데 사용된다'라고 직접적으로 언급된 근거 자료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시점이 고관절보다 더 위쪽인 장골능(iliac crest)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유추해 보면 90도 이상 다리를 들 때 어느 정도 보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된 내용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뜻일 수 있다. 혹은 아직 관련 연구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연구 주제로서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일 수 있다. (누가 일상생활에서 다리를 120도 이상 앞으로 번쩍 들고 버티려고 할까...ㅎㅎ) 또한 특정 발레 동작을 함에 있어 한 근육이 홀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러 근육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이 동작에 이 근육이 쓰인다/안 쓰인다'라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고려 끝에 다리를 앞으로 높이 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근육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장요근, 대퇴근막장근, 중둔근 전방 섬유, 소둔근 전방 섬유'이다. 이 근육들은 다리를 앞으로 높이 드는 동시에 턴아웃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장요근
장요근은 주행 방향만 보면 마치 고관절 굴곡과 함께 외회전을 일으킬 것 같다.
-[카판지 기능 해부학]에서는 장요근은 고관절의 굴곡, 외회전, 벌림을 동시에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1999년에 시행한 카데바(해부용 시체) 연구에서 장요근은 앞으로 다리를 들 때 회전 기능이 없다고 밝혀졌다. [뉴만 Kinesiology]도 이 연구를 인용하여 장요근은 해부학적 자세에서 고관절 굴곡을 일으킬 때 회전 기능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카데바를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1998년에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장요근은 고관절 외회전을 할 때 더 활성화가 많이 된다고 밝혀졌다. 서 있거나(=고관절 신전) 앉아 있는 상태(=고관절 굴곡)에서, 등척성으로 외회전과 내회전을 할 때 근육 활성을 비교했는데 두 경우 모두 외회전을 할 때 장요근이 훨씬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대상이 5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장요근이 실제로 외회전을 하는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척추를 안정화하는데 동원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장요근은 다리를 앞으로 들면서 동시에 외회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인다.
●대퇴근막장근, 중둔근 전방 섬유, 소둔근 전방 섬유
-이들은 모두 고관절 내회전을 함께 일으킨다. 다리를 높이 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장요근을 최대한 쓰면서, 동시에 이 근육들까지 동원하게 되는데, 이들의 힘이 커질수록 내회전 힘도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고관절 외전(벌림)을 동시에 일으킨다. 즉 다리를 살짝 옆으로 벌어지게 만든다. 다리를 높이 들기 위해 이 근육들에 힘이 많이 들어갈수록 다리가 옆으로 빠지려고 하는데, 이때 정 앞쪽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보상적으로 다리를 든 쪽의 골반이 앞으로 딸려 나가게 된다.
실제 발레리나들의 드방은 어떨까? 바가노바 학생들의 예시를 찾아봤다. 유튜브에 공개된 실기시험 영상에서 아다지오 중 드방으로 다리를 들고 있는 장면을 캡처했다. 멀리서 보면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확대해서 발등과 뒤꿈치 방향을 확인해 보면 거의 완전한 턴인 상태다. 극단적으로 완벽한 턴아웃을 추구하는 바가노바에서도 드방으로 높이 다리를 들 때는 턴인 상태를 허용한다. 서 있는 다리와 골반, 척추의 정렬을 최대한 바르게 유지하는 상태에서 일종의 시적 허용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턴아웃이 잘 될수록 고관절의 가동 범위가 넓어지고, 다리를 더 높이 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어왔던 것 같다. 다리를 높이 들려면 일단 턴아웃이 잘돼야 한다고 조언하는 경우도 많이 본 것 같다. 하지만 이때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적어도 앞으로 다리를 높이 드는 것은 턴아웃과 그리 큰 연관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2010년에 한국무용교육 학회지에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턴아웃이 발레 동작의 고관절 움직임 범위에서 가지는 기능적 역할에 관한 연구')가 소개됐다. 25명의 발레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턴아웃이 잘 되는 정도와 앞, 옆, 뒤 데벨로페 각도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는데, 결과는 앞과 옆은 관련이 없고 뒤는 관련이 있다고 나왔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연구자는 다리를 더 높이 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한 턴아웃을 시키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오버해서 턴인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턴아웃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리를 높게 드는 것의 실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드방의 시적 허용" 개념을 아예 모르면 90도 이상 다리를 높이 드는 테크닉과 나를 완전히 경계를 짓고, 나는 절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능률을 떨어뜨릴 확률이 높다. 물론 취미로 발레를 하는 입장에서는 저렇게까지 완벽한 라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드방으로 다리를 들 때 무조건 턴아웃을 백 프로 유지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높이 들 수 있겠지 하고 막연하게 바란다면 그 바람은 영영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 내가 하고자 하는 동작이 정확히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나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는 동시에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도 제시해 줄 것이다.
다음에는 실제로 드방으로 다리를 잘 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
<참고>
뉴만 Kinesiology
카판지 기능 해부학
Dance anatomy & kinesiology
Beck et al. (2000) The anatomy and function of the gluteus minimus muscle. Journal of Bone and Joint Surgery.
Blemker, Delp (2005) Three-dimensional representation of complex muscle architectures and geometries. Ann Biomed Eng.
Juker et al. (1998) Quantitative intramuscular myoelectric activity of lumbar portions of psoas and the abdominal wall during a wide variety of tasks. Medicine & Science in Sports & Exercise.
Neumann (2010) Kinesiology of the Hip: A focus on muscular action. Journal of orthopaedic & Sports Physical Therapy.
Skyrme et al. (1999) Psoas major and its controversial rotational action. Clinical Anatomy.
https://www.otpbooks.com/mike-boyle-hip-flex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