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제목도, 가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를 점점 만들지 않고, 그 자리를 음악 자동 추천이 대신한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리기 어렵다. 책에 손이 잘 안 간다. 그 자리를 유튜브 알고리즘과 릴스가 대신한다.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일기도, 휴대폰 메모에 남기는 짧은 문장도 드문드문하다.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아득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을 멈추고 덜 괴로워지는 방법뿐이라고 되새긴다. 생각의 자리를 체념 섞인 긍정과 수동적 순응이 대신한다. 궁금한 게 없다. 질문을 만들려 해도 떠오르지 않고, 흥미에 눈을 반짝이는 일도 점점 사라진다. 질문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던 시절이 전생 같다.
출근 전 아침에 카페에 들러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몇 년째 이어 온 버릇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만 간헐적으로 이뤄졌지만, 어떤 직장에서 일하든 그 시간이 필요한 때가 오면 꼭 일찍 일어났다. 길면 두 시간, 짧으면 삼십 분 정도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일이 많을 땐 일을 하기도 했다. 그 시간엔 무엇을 하든 충전이 됐다. 하루의 시작이 사무실이 아닌 것만으로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은 지 반년 정도 되었다. 출근 전 카페는 충전소가 아니라 일하다 눈물을 줄줄 흘린 공간이 되었다. 끝나지 않는 일과 스트레스의 상징으로 변했다.
오랫동안 지켜온 소중한 버릇이 오염되었는데 복구할 방법을 모르겠다. 보람도 인정도 성취도 없는 곳에서 허우적대던 시간이 모든 걸 잡아먹었나 보다. 시간이 뱉어낸 찌꺼기에 낡고 지친 몸과 마음만 남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떠올리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취향과 취미를 잃는 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연결되는가. 모르겠다. 잃고 있는 감각만이 분명하다. 서늘함이 지나고 나면 허기가 차오른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무리 많이 자도 채워지지 않는다. 감각을 완전히 잃고 나면 어떻게 될까. 잃어버려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찾을까. 얼마나 걸릴까. 일에게 잡아먹힌 시간은 지나갔으나 몸과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