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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Oct 23. 2023

기득권 뜯어고치기

1980년대 미국 농부 1명은 65명이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했다. 반면 소련 농부는 겨우 8명이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했다. 소련의 지도자들은 집단농장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웃 나라 중국이 농업 개혁에 성공하여 농업 생산이 늘어나는 것도 목격했다. 하지만 소련은 집단 농장을 고집했다. 소련은 왜 집단농장을 계속 유지했을까?


소련이 농업을 개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관료의 집단 이익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강력하다. 소련이 단순한 농업 부분에서조차 계획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면 복잡한 다른 산업에서도 계획경제를 포기해야 한다. 자유경제를 도입하여 농업 부분에서 성공하면 다른 산업에서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관료체제의 붕괴를 말한다. 집단농장에서 농부를 해방시키고 공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자유롭게 생산하도록 하는 것은 관료의 지위를 위태롭게 한다. 정보 유통을 자유롭게 하고 개인의 창의력을 장려하는 것은 기득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개혁은 사회주의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해야 했다. 당에 대한 충성과 과학적 사회주의 내에서 해야 했다. 계획수립을 유연하게 하고, 투자를 증대하며, 알코올 및 부패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했다. 시장경제나 사기업 도입 같은 근본 개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본주의 아이디어를 도입하거나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의 지도력을 비판하는 것은 금지였다. 소련의 관료들은 가격통제 및 계획경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러시아가 정체된 이유는 관료의 기득권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로마 최고의 부자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였다. 크라수스는 광산에서 노예무역까지 다양한 사업을 했지만 그는 소방사업에서 가장 큰돈을 벌었다. 


로마 시내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크라수스는 시시각각 불타는 집에 미쳐 가는 집주인과 서비스 요금을 협상했다. 그는 유리한 지위에서 협상하여 불타는 집의 소유권을 가져가고 집주인에게 임대료를 받았다. 로마인은 크라수스 같은 악덕 자본가에게 벗어나고자 공공 소방을 주장했다. 로마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로마인의 꿈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크라수스의 뇌물과 부패로 실패했다.


크라수스는 장래가 유망한 정치인을 골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소방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상원에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렸다. 이 투자의 대표적 수혜자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였다. 카이사르는 답례로 크 라수스의 사업을 잘 보호했을 뿐 아니라 다른 특권도 부여했다. 


그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크라수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명예와 전리품이라는 부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크라수스는 기원전 53년의 카랜 전투(Battle of Carrhae)에서 대패했다. 로마에서 가장 큰 부자를 생포했다는 것을 알게 된 파르티아는 끓는 금물을 크라수스의 목에 부었다 한다. 이는 평생 금에 눈이 어두웠던 부자에게 죽어서라도 금으로 갈증을 채우라는 배려였다 한다.


                                                                                  ***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이 대립하면 의외로 소수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기득권과 생존이 걸린 소수는 뭉치는 반면 약간의 손해를 보는 다수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일반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되지만 약사들의 반대로 시행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의 가격도 높게 하여 약사가 손해보지 않도록 조정했다. 판매가격이 높으면 편의점도 손해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같은 이유로 휴대전화 요금은 통신사가 유리하게 설계되어 잘 바뀌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조정하기 힘든 것도 기득권의 힘이다. 대부분 국민들이 싫어하지만 KBS가 시청료 매번 올려야 한다고 떳떳하게 주장하는 이유이다. 소수의 기득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수의 무관심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언론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


언론은 공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언론은 고객을 확보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활동하며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부수적인 목표가 된다. 언론이 기득권 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람은 페루의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이다. 


후지모리는 부패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조직을 매수했다. 국가정보원장인 몬테시노스(Vladimiro Montesinos)는 뇌물 비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이는 부패 비용을 수치로 보여주는 좋은 사 례이다. 몬테시노스는 국회의원, 판사, 신문 편집장, TV 및 라디오를 매수했다.


몬테시노스의 뇌물 지급액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매수 리스트에 있는 국회의원과 판사는 많아야 매월 천불 수준에서 해결됐다. 신문 또한 매월 몇천 달러 수준의 뇌물이면 충분했다. 


가장 비싼 곳은 매월 백만 달러를 받던 TV방송국이었다. 몬테시노스는 정부의 광고 예산을 50% 늘려 이들 매체를 추가로 지원했다. 몬테시노스는 TV방송국을 장악했고 배신을 막기 위해 TV채널 관계자의 성관계 영상과 뇌물을 지급받는 영상 등을 만들어 협박했으며 뇌물계약서를 만들어 정권에 협력 기준을 표준화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몬테시노스는 독자가 만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국영금융방송을 매수하는 것을 잊었다. 이 방송은 몬테시노스가 판사에게 뇌물 주는 것을 방영했고, 이를 계기로 후지모리 정권이 무너졌다. 후지모리는 기득권 유지에 언론, 특히 TV방송이 중요하다 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몬테시노스는 왜 자신에게 불리한 뇌물 비용 기록을 자세하게 남기었을까? 이는 범죄조직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는 은밀하게 거래되는 자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두목의 돈을 탐하였다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 당하는 일이 없도록 결백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독재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 증거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몰락을 가져왔다.


                                                                             ***


정치인에게 새로운 세금은 죽음과의 키스이다. 새로운 세금은 과거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 의해 부결되거나 납세자의 반발을 사 낙선하게 만든다. 부가가치세는 효율적인 세금이나 미국에서 부가가치세 도입을 주장한 의원은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은 부가가치세를 가난한 사람이 더 내는 부당한 세금이라 하고, 공화당은 부가가치세가 세금을 수확하는 기계라 생각한다. 보통 사람이 가진 평균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세금은 권력을 잃는 지름길이 된다. 세금문제에 있어 선구자적인 입법은 위험한 폭발물을 건드리는 것이다. 정치인이 세금 개혁을 싫어하고 막판까지 이를 미루는 이유이다.


                                                                                     ***


1990년 영국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은 ‘지역사회세’라는 이름의 세금을 도입했다. 인두세라고도 불린 이 세금은 같은 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금액의 지방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종전의 세금은 건물에 대한 지방세였다. 이 세금은 명목상 지주들이 납부했지만 당연히 임차인에게 전가됐다. 건물 가격 평가 또한 갱신되지 않아 불합리한 세금이었다. 대처는 개혁을 통해 방대한 지방행적조직에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지방세를 모든 사람에게 거두어 유권자가 지방조직의 방대한 경영을 견제하도록 했다. 이론상으로 상당히 합리적이다. 


문제는 작은 원룸에서 거주하는 임차인이나 호화 빌라 거주자가 동등하게 250파운드를 내야 하는 형평성에서 생겨났다. 가난한 납세자들은 이 세금에 분노로 응답했다. 그들은 납세를 거부했으며 세무서에 벽돌을 던졌고 거리에서 시위했다. 포르셰 같은 고급 차는 방화로 불탔다.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하여 400명 이상이 다쳤으며 경찰은 폭행, 방화, 약탈 협의로 341명을 검거했다. 백 년 만에 일어난 최대 폭동에 이 세금을 즉시 폐지했고 철의 수상은 직업을 잃었다.


환경보호 같은 우아한 원칙도 세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탄소세를 둘러싼 호주의 경험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호주 노동당 대표 길라드(Gulia Gillard)는 2010년 선거에서 논란이 있던 탄소세를 절대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선거에서 과반에 실패한 길라드는 녹색당과 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녹색당과 연정을 위해 길라드는 광산, 발전소, 공장 등에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탄소세로 인해 전기요금은 11% 상승했고 가정에서는 평균 500달러의 전기요금을 매년 추가로 납부해야 했다. 사람 들은 고상한 원칙에도 비용 지불에는 인색하다. 


현실화된 세금 앞에 탄소세에 대한 지지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야당에서는 이를 맹공했고 위기를 느낀 노동당은 2013년 길라드를 해임하고 선거에 임했으나 패배했다. 호주에서 탄소세는 실행된 지 2년 만에 폐지됐다. 아무리 좋은 세금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세금은 정착하기 어렵다. 기득권은 정치인과 권력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방식에 익숙한 보통 사람도 가지고 있다. 


케인즈(Maynard Keynes)는 ‘조세회피는 지금까지 보상이 있는 유일한 지적활동이다’ 했다.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조세를 회피한다. 일반인은 권력자에 비해 기회가 적을 뿐이다. 1987년 미국 소득세 신고에서 7백만 명의 어린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의 공식서류에서 1년 만에 7백만 명의 어린이가 실종되는 거대한 유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1986년 세법에서 부양가족(dependent)을 신고할 때 5세 이상인 경우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기 전 사람들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서 부양가족을 공제받았다.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를 부양가족으로 신고했다. 사라진 7백만 명은 전체 부양가족의 9%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이다. 사람들은 개, 고양이를 자신이 보호하는 가족(Dependent)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낄 일이 없었다. 


국세청은 이후 과도하게 부양가족 소득공제를 한 사람들을 조사했고 평균 2,000달러를 부당 공제했다고 밝혔다. 단순하게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게 한 이 개혁은 미국에서 매년 30조 달러의 추가적인 조세수입을 가져왔다.


                                                                                      ***


헨리 포드(Henry Ford)는 자동차 사고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안전유리를 생각했다. 전문가에게 깨지지 않는 유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많은 이유를 대면서 안전유리는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포드는 안전유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를 데려오라 했다. 포드는 젊은 엔지니어를 통해 안전유리를 만들 수 있었다. 


조세 개혁에는 이러한 발상이 필요하다. 증세라는 위험한 발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고 소득세율 94%를 부과할 수 있었다. 전쟁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닌 현재 세계 각국은 조세수입을 늘리기 위해 재정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Introduction, page 14, Taming the Monster, page 470-471,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BBLR page 54-55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he Offstage Superpowers, page 321-322,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he Changing Economic Balance, 1590 to 1980, page 431, The Soviet Union and Its “Contractions”, page 488-492, page 498-499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Taxes: what are they good for? page 29-30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Paul Kennedy, Frist Vintage Edition 1989), The United States: The Problem of Number One in Relative Decline, page 524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policy laboratories, page 11, The Single Tax, The Fat Tax, The Tiny Tax, The Carbon Tax – and No Tax at All, page 188, The Money Machine, page 245, page 248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Flat Broke, page 96, The Single Tax, The Fat Tax, The Tiny Tax, The Carbon Tax–and No Tax at All, page 189-191

Freakonomics (Steven D, Levitt and Stephen J. Dubner,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2005), School teachers and sumo wrestlers, page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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