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근무하던 날들
비교적 최근 알게 된 사실인데
눈은 결정 속에 소리를 가둔다고 한다.
고요함
많은 류의 고요함을 알고 있지만, 눈이 오는 날은 정말 온 세상이 조용하다. 그래서 모처럼 그 적막함을 귀가 아닌 감각으로 가만히 느껴본다.
눈과 관련된 추억을 떠올려 보면 역시 평창 생각이 많이 난다. 눈이 많이 내리기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 중 하나답게 여름을 제외하고는 계절을 무시하며 눈을 뿌려댔다.
생각해 보면 눈을 가장 눈답게 잘 즐길 수 있었던 시기였다. 눈이 내리면 호들갑 떨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발자국도 남겨보았다. 조그맣게나마 눈사람들 만들기도, 눈을 뭉쳐 누군가에게 던져보기도 했다. 악명 높은 대관령의 겨울을 준비하며 침대 위에는 따수미 텐트를 놓아두고, 방한화를 몇 개씩 미리 주문하며 설렜다.
그렇게 눈이 지겹도록 내리고, 녹기도 전에 또 쌓이던 그곳에서는 왜 느끼지 못했던 걸까 지금 도시에서 느끼는 이 눈 오는 날의 고요함을.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고독할 겨를이 없었던 걸까, 왁자지껄 별거 아닌 일에 떠들고 웃으며 시간을 가두어 놓느라 고요함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내게 귀 기울이기보다 신경을 외부로 분산시켜 사색을 즐기지 못했던 까닭일까(참고로 나는 이때 지독한 짝사랑을 한번, 망한 사랑을 한 번씩 경험했다).
도시로 돌아와 그곳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양의 눈을 못내 아쉽게 바라보기를 또 몇 해,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일이 끝나고 각자 사는 곳으로 돌아온 후, 더 이상 매일을 공유하지 못해 사람들에게 느꼈던 어린 서운함은 시간과 함께 녹아내리고. 변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과 함께 내 일상에서 잉태된 불안은 그냥 살아내는 것 만으로 자연스레 흐물텅 녹아 씻겨 내렸다.
아마 이런 마음을 언젠가 다른 누군가와의 경험을 통해 먼저 겪었을지도 모르는 언니오빠들이, 몇 번은 혼자 오르락내리락했을 내 마음을 통해 내린 결론과는 관계없이 언제 보아도 변함없는 미소로 안아주었다.
그때 그들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이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답이 있을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별안간 누구를 떠올리고 기분이 좋아져 웃음 짓고 만다면 그걸로 충분하단걸 근래 알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그토록 상투적인 말은 이런 의미였을까.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눈발을 헤치고 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고
빨간 얼굴로 마주 보며 웃는 마음이 아니어도 좋다.
모처럼 눈 속에 갇혀있는 시간들을 각자 꺼내보며
저마다 고요하게 서로를 떠올려보는 순간이면 좋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멀리 있다.
그리고 눈 속에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