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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Feb 08. 2024

1월 1일은 졸음 쉼터,
나의 새해 첫날은 오늘입니다

- 행복한 2024년을 위한 나만의 시작점 찾기

 교사인 나는 한 해의 시작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 직장인 상당수는 1월 1일 시작을 열고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반면 3월 초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한 학년도(學年度)인 학교는 준비가 시작되는 2월을 출발점으로 하여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쯤 정리국면에 도달한다.     


 그래서인가, 나의 1년 시계 작동법 역시 남들과 차이가 있다. 첫째, 1월 1일에 대한 감흥이 없다. 나이와 함께 낡아가는 감성 탓도 있겠지만 TV로나마‘보신각 종소리’로 새로움을 확인하던 정성은 사라진 지 오래, 12시 정각에 카톡이 울리면 무슨 일인가 싶어 화들짝 놀란다. 신년인사를 챙기는 마음 젊은 지인이 아직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신기해하며. 


 내게 1월 1일은 학년도의 끝자락에 찾아온 가뭄에 단비 같은 휴일일 뿐이다. 학교의 12월은 고난의 시기, 풀릴 대로 풀린 눈으로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아예 없는 26명의 학생들과 함께 하다 보면 깔딱 고개를 간신히 넘어가는 기분이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남은 기운을 쪽쪽 빨아가며 버티고 있다고나 할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새해의 다짐, 곧 다가올 다음 학년에 대한 각오, 그보다 더 먼저 다가올 겨울방학에 대한 계획을 알뜰히 세워보자 독려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엔 피곤함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신선함을 주문하기엔 나 역시 탈진 직전이다. 그러다 보니 1월 1일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나 신년인사 문자 따위는 단잠을 방해하는 요인일 뿐, 나의 영육은 새로움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채 한 해의 시작 날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년이 끝나지 않았는데 행정업무는 연말로 마무리되니 여기서 오는 혼란도 남들과 다른 지점이다. 모든 서류나 정산을 연말 전에 끝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1월, 2월에 진행되는 교육활동도 해 넘어가기 전 계획을 미리 세워두어야 한다. 출결이나 체험학습보고서 같은 서류 역시 12월 31일까지 정리하다 보니 이후 학생들이 결석하거나 체험학습을 하면 담당자가 서류를 별도 보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교육활동은 2월까지 진행되는데 교원 성과에 포함되는 실적은 연말까지 증명해야 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한 학년이 끝나가고 있는 교실은 이런 서류 작업을 들이대지 않아도 충분히 정신없다. 일 년 새 성장한 학생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관계를 발전적으로 매듭짓기 위해 고민하고, 한 교실에서 보낸 시간을 의미 있게 남기기 위한 활동을 고민하느라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짠다. 이런 시점에 숨 쉴 틈 없이 요구되는 각종 서류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교육활동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그 무심하고 일방적인 절차에 답도 없이 화가 난다. 행정 업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교육의 특수성이 너무도 간단히 무시되는 현실이 속상하달까. 교사로서 나의 1월 시계는 이처럼 피곤함이 가득한 채 돌아간다.     


 누구나 한 해의 시작점을 1월 1일로 여기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마음을 다지고, 작심삼일이라도 목표를 세우며 신년 운수를 점쳐야 새해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계기가 없어도 늘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보자 당차게 다짐하지만 곧 느슨해지고 허물어지기에 우리는 시작점을 정한다. 1월 1일, 한 달의 첫날, 한 주일의 월요일, 혹은 자신 만의 기념일로. 

 ‘한 해’라는 암벽을 등반할 때 이런 시작점들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클라이밍 홀드(등반 중에 손이나 발을 고정하는 데 사용되는 암벽의 돌출 부분)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꽤 큰 지지대 하나를 놓치고 시작하는 셈이다. 무심히 흘려보낸 새해가 새삼 아깝게 느껴진다.      


 교사로 늙어가는 한 나의 1월 1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굼뜬 내가 아닌가. 더하면 더했지 나아지지 않을 쇠락한 몸 상태를 짐작하건대 소진 일보 직전으로 연말을 맞이할 가능성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아쉽지만 떠오르는 해를 몸으로 체험하며 새해 각오를 다질 생각은 접자. 면역력 떨어져 마무리도 제대로 못하고 망칠지 모르니 말이다. 남들처럼 새로움을 맞이하려는 계획은 금물, 나의 1월 1일은 제대로 끝맺기 위한 휴식의 시간이면 족하다.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졸음쉼터라고나 할까.    

 

 대신 나만의 한해 시작점을 새기려 노력해 보자. 인생을 반쯤 살다 보니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를 보낼 때가 적지 않다. 평온함을 일컫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매너리즘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어도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을 나의 언어로 새기기, 그런 시작점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면 조금은 산뜻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올해 나의 첫 시작점은 2월 8일, 아무것도 쓰지 못해 허덕이던 시간을 지나 한 꼭지의 글을 완성한 오늘로 새겨본다. 나만의 언어가 곳곳에 담겨 있는 한 해로 갑진년이 채워지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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