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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Sep 25. 2024

무수리 병에는 약도 없다는데

 “언니,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 주 금, 토 1박 2일 여행 가기로 했어.”

 “알았어, 잘 다녀와.”

 “아무래도 올라오긴 힘들지?”

 “나도 주말에는 할 일이 있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말 일정을 다시 살펴본다. 글도 최소한 한 편은 써야겠고, 독서 모임이 두 개나 있으니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 도전한 일까지 생겼으니 괜스레 마음이 바쁘다. 더욱이 금요일 조퇴하고 광명까지 가려면 얼마나 학교에서 허둥대야 할까, 접자 접어. 


 안 가기로 결정했지만 금요일이 지날 때까지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고작 하루, 그것도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계시니 엄마는 오후 5시 이후부터 다음날까지 엄밀히 따지면 24시간도 못 미칠 만큼만 혼자 있게 된다. 안전한 집안, 보나 마나 동생이 종류별로 마련했을 온갖 조치와 함께.     

 가지 않기로 했으면 그걸로 끝이지 아무짝에도 소용없이 스스로 왜 마음을 볶아댈까. 예전 같으면 결국 금요일 조퇴를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마음 부대끼는 것보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지 싶어서. 이번엔 속은 좀 끓였어도 당진에 머물렀으니 ‘병세’가 조금은 호전됐나 보다.     



 나는 꽤 오래 병을 앓고 있다. 일명 ‘무수리’ 병. 동생 역시 동종질병 소유자다. 그러니 하루 여행을 위해 이 친구가 얼마나 앞뒤 시간을 재고 따졌을지, 혼자 드실 세 번의 식사 메뉴 선정에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을지, 만약을 대비하여 A부터 Z까지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를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지 못해 조심스럽게 언니의 주말 일정을 확인한 거겠지.      


 무수리 병의 대표증상은 자발적인 낮은 포복. 늘 상대방 표정과 말투를 신경 쓰며 할 일이 없나 두리번거린다. 부모님이 대상이면 증상이 심해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요양병원 입원 중인 아버지가 집에 다녀가는 날이면 누가 봐도 다분히 ‘엄살’ 섞인 요구도 일단은 최대한 맞춰본다. 30초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 달라 해도, 식사 때 숟가락조차 들지 않으려 해도, 휠체어에서 이동할 때 온전히 몸을 맡겨버려도 두 딸은 전전긍긍하며 응한다. 다시 병원에 돌아가면 기적이 일어난 듯, 두 다리로 일어서 침대로 이동하고 당신 손을 움직여 밥을 드실 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하기 힘들다.      

아버지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의 요구는 잠잠해지느냐, 천만의 말씀. 형제에게 사랑 뺏긴 아이인 양 불만이 증폭되어 우리를 기함하게 한다. 


 얼마 전, 아버지를 모시고 나온 주말이었다. 그날도 여지없이 휠체어에서 차로, 차에서 다시 휠체어로, 집에 도착에서 거실로 이동하여 앉혀드리고, 기저귀 상태를 확인하고, 점심 준비하느라 분초를 다투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소화가 어려운 아버지를 위해 동생은 전복죽을 만들었고 나도 부드러운 과일을 깎네, 반찬을 차리네 정신이 없었다. 이 와중에 동생이 속삭였다.     


 “엄마는 전복죽 싫다고 안 드실 수도 있어.”

 “설마, 이도 부실해서 요즘 부드러운 것만 찾으시잖아. 그런데 굳이?”

 “두고 보자고. 혹시 몰라 미리 말해두는 거야. 듣고 성질내지 말라고.” 

    

 조금 있다 엄마가 슬금슬금 부엌에 다가오더니 한 말씀하셨다.

 “나 죽 싫다. 다른 거 없냐?”

 “누룽지 있어요. 그거 드릴게요.”

 동생은 다 계획이 있었다.     


 “아버지 나오는 날 얼마나 정신없는지 뻔히 알면서 엄마도 참, 그냥 전복죽 같이 드시자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준비했어. 그러니까 자꾸 요구사항이 늘어나잖아.”

 “왜 이래, 같은 무수리 병 환자끼리 서로 공격하지 맙시다. 어제 죽 끓일 때부터 표정이 안 좋더라고. 당신 위한 준비가 아닌 걸 아시는 거지.”     


 무수리 병의 치료가 어려운 까닭은 ‘배려’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살피고 돌보려는 마음은 같지만 종종 그 무게에 치여 허덕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말이 맵고 정 없는 태도가 종종 삐져나오기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관계지향형 인간, 관계에 흠집이 날까 봐 눈치 보거나 나보다 상대방의 상황을 먼저 염두에 두고선 그것을 ‘배려’라 착각했다. 결국 감당하지 못할 무게로 관계마저 삐걱거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치료가 필요한 병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부모님을 향한 무수리 병은 아무래도 백약이 무효할 것 같다. 여전히 몸과 마음은 부대끼지만 함께 할 남은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고단함 따위 하찮게 느껴진다. 하여 자발적으로 이 병을 키우고 있음을 고백한다. 


 동생 역시 병증의 진행 양상이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날로 쇠약하고 무력해지는 부모님의 시간을 메워줄 물품과 메뉴를 경쟁적으로 검색하고 마련한다. 서로 무수리 병이 심해진다고 탓하며 부모님의 응석이 늘어나는 책임을 상대에게 돌린다. 한숨을 쉬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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