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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영 Apr 26. 2023

보아야 잊는다

직면하기


1. '작별' 프로젝트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경하와 인선은 동갑내기 친구다. 둘은 일로 만났다가 친구가 되었다.


경하는 사 년 전 제주 4·3 사건에 관한 책을 쓴 후, 이상한 꿈을 꿨다. 벌판에 눈이 내리고 검은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밀려오는 꿈. 그 꿈이 자꾸 생각나 마음이 쓰였던 경하는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었던 인선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통나무를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리며 그걸 영상으로 담아보자는 제안이었다. 인선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정이 맞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사 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인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서울에 있는 봉합수술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 집에 내려가 키우고 있는 새를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제주로 내려간 경하는 폭설과 강풍을 뚫고 힘겹게 인선의 집을 찾아간다.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새는 죽어있었다.


집을 둘러보던 중 경하는 공방 앞에 있는 수십 그루의 통나무를 발견한다. 그것은 경하가 제안했던 프로젝트에 사용할 통나무였다. 그동안 인선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고, 거기에 사용할 통나무를 자르다 손가락을 다친 것이었다.


잠이 든 경하는 꿈속에서 인선을 만난다. 상자를 꺼내온 인선은 젊은 남녀의 사진과 자료들을 보여준다. 경하는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알게 된다. 어머니는 부모와 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채로 언니와 남겨졌고, 아버지는 온 가족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십오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상자에서 꺼내온 변색된 신문 조각들.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들어선 후 시작된 유해 발굴에 대한 자료들. 이 섬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알리는 자료들. 인선의 어머니가 오빠의 유해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모아 온 자료들이다. 인선은 나무를 심을 곳으로 경하를 데리고 간다. 그곳은 아버지의 집터가 있던 곳,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곳이다.


인선은 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본격적으로 자료를 찾기 시작했으며, 이제 경하와 함께 그 프로젝트를 할 준비가 되었음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해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2. 작별의 자세



경하가 인선에게 제안했던 프로젝트의 제목은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하지만 경하가 인선에게 그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유는 '작별하고 싶어서'였다.


경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책을 준비하는 내내 악몽에 시달린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책을 빨리 내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한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그 악몽과 작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악몽은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꿈이 너무 신경 쓰였던 경하는 인선에게 그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경하는 하루빨리 그 고통과 작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된 채 사 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경하는 그 고통과 작별한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인선을 통해 작별하지 않았음을 아니 작별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인선은 어떨까? 경하가 그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부터, 경하가 그 고통과 작별한 줄 알았던 사 년이란 시간 동안, 묵묵히 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인선의 부모님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였으며,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다가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고통을 자라는 내내 지켜본 인선은 누구보다도 그 고통과 작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선은 직면한다. 고통스럽지만 더 많이 더 깊이 마주한다. 그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이면 자료들을 읽고 정리하며 날을 지새운다. 그렇게 그들의 고통을 마주하고 함께하며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애도한다.


아마도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직면하기는 그 고통과 진정으로 작별하기 위해 인선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맘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맘 편히 부모님을 인선의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고통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피해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인선처럼 직면할 수 있을지······. 그녀의 용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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