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 Nov 26. 2023

방어가 많이 잡혀 우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방어를 먹지 말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날이 춥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로 춥다는 느낌이 없었건만, 이제는 맨살이 드러나 있는 부분이 찡하니 울리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날이 춥다며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이 텔레비전에서 줄곧 흘러나온다. 겨울이 왔다는 것을 내 몸으로 직접 한번, 뉴스로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더운 것도 추운 것도 싫어하는 까탈스러운 나는 혼잣말로 투덜대면서 주섬주섬 내복과 목도리, 두꺼운 패딩을 꺼냈다. 추운 것이 뭐 이리 싫은지. 과거 철원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느낄 추위를 모두 겪었기 때문일까? 투덜대면서 전기장판을 뜨거울 정도로 키고 누워버렸다. 추운 건 싫지만 추운 공기 속에서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는 건 또 마냥 나쁘지 않다.


날이 추워지니 옷은 두꺼워지고, 자연스레 내 몸도 함께 두꺼워지고 있다. 겨울이 되니 뭐 이리도 맛있는 것들이 많은지. 집 앞에만 나가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과 호떡이 있고, 집 안에는 뜨거운 군고구마와 달콤한 귤까지. 이것들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결국 살이 찌는 건 잠시 잊고, 제철 음식을 즐기기로 결정하곤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결국 간식이다. 간식을 즐기다 보면, 본식이 당겨오는 법. 얼마 전 뉴스에서 방어 가격이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 방어의 기름짐과 식감이 떠올랐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갖는 그놈. 조만간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어가 엄청 비쌌던 기억이 나는데, 올해는 왜 저렴할까? 돈이 얼마 없던 나에겐 그저 맛만 볼 수 있는 정도였건만. 물론, 가격이 싸다니 흥겨울 뿐이지만 또, 호기심이라는 놈이 나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자리에 앉아 초록창을 켜고, 방어가 싼 이유를 찾아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다 수온이 올라 난류성 어종인 방어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나 잡히던 방어가 동해안에서도 잔뜩 잡히니, 가격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방어를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은 "땡큐 지구온난화"를 외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오징어, 멸치와 같은 어류는 수확량이 급감했다. 조금 더 시원한 바다를 찾아 오징어, 멸치는 북쪽으로 떠났고, 그 빈자리를 방어와 참치가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방어는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말린 오징어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께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징어와 멸치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쁠 건 없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애써 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또 많은 생각이 든다. 어딜 가나 등장하는 지구온난화라는 놈.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스러운 지구의 흐름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의 시작일까. 오징어를 잡던 어민에게는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겠지만, 동해 인근에서 방어를 잡는 어민은 점점 늘어가는 어획량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는 나는 출근길이 추워 불편할 뿐이지만, 저기 골목길 반지하 방에 사는 할머니에게는 생존을 위협받는 세상이겠구나. 어렵기만 하다.


옛날에 그러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범죄자의 형벌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나와, 범죄를 저지른 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이 '적절한'수준의 형벌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모든 상황에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보면 합리적 수준의 형벌을 결정하는 데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가정했을 때 징역형은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튼 법리적인 문제를 다루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걸,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에 대입해 보면 꽤나 괜찮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구 온난화에 의한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 정도를 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지원하는 주체의 입장에서도 납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오징어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에게 지원을 하는 방식, 규모에 있어서 정부(시민)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하며, 어민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에 단순한 금전적 지원은 문제가 많을 수 있겠다. 타 어류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던지, 오징어 수확량이 줄더라도 이윤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다던지의 방법은 보다 양측에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리라 생각된다. 기후 변화에 많이 노출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지원하는 주체의 입장, 저소득층의 입장 양 측에서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선을 최대한 찾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방어를 먹으면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오히려 어획량이 줄어든 오징어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걱정하며, 이상 기후에 노출된 저소득층을 걱정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세상사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가면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단지 방어를 싸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지구온난화라는 놈을 착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뿐이다. 방어로 돈을 버는 사람, 방어를 먹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이와 동시에 어떤 곳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인식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그러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지원할 때에는 무작정 지원하는 것이 아닌, 양쪽 모두가 합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 되겠다.


생각보다 단 한 번의 인식은 많은 것을 바꾼다. 인식은 관심을 부르고, 관심은 행동을 만든다. 글을 쓰는 나의 수많은 목표 중 하나는 환경에 대한 것을 글을 읽는 이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일례로 선크림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선크림이라는 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인식시켰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은 백 명 중의 열명은 이에 관심을 가져 찾아봤을 것이고, 그 열명 중 한 명은 이번 여름 바다에서 선크림을 바르지 않거나, 해양 생물에게 무해한 선크림을 구매해 발랐을 수도 있다. 그 알지 못할 힘이 글에는 담겨 있지 않을까. 올 겨울 방어를 먹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방어가 싼 이유가 지구 온난화 때문이래"라는 말을 하게 되고, 지구 온난화에 일말의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이번 글이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민다면 더 큰 의미를 갖고,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얼마 전 어머니와 수다를 떠는데,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올해는 뭔가 연말 같아!"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난 크게 공감했다. 요 몇 년간 그저 겨울의 느낌이었건만, 올해는 참 연말스럽다 느껴졌다. 어딘가에는 캐럴이 들리고, 송년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의 인연들에게 연락도 하고, 술자리를 잡기도 했다. 추운 겨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이 따뜻했으면 한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라며.


(표지 이미지 - 겨울풍경, 이인성, 한국데이터산업징흥원(김당진미술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분쇄기와 갤럭시, 아이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