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폭력>

by 해일

*2023년 작성된 글입니다*


최근 ‘오징어 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고담 어워즈’의 수상작이 되는 등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드라마에 필요 이상의 폭력성이 내재하여 있음에도 대중이 이에 열광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현재와 같은 디지털 시대는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에 이러한 미디어의 폭력성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오징어 게임’ 외에도 최근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인 범죄도시, 더 글로리, 스위트홈 등을 살펴보면 모두 폭력성을 수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력적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폭력은 가장 빠르고 쉽게 시장성을 획득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한 욕망은 늘 사회 속에 내재되어 있고, 그것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한다. 결국 콘텐츠의 폭력성은 시장성과 오락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명목 아래 용인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폭력에 둔감한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에 대한 한국의 반응이다. 이는 2022년 3월 27일 개최된 제9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희극인 크리스 록이 아내에 대해 소수자성을 향한 조롱을 담은 농담을 하자 무대에 올라가 뺨을 때린 사건이다.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미디어 리얼서치 코리아가 전 세계 성인 남녀 4만 3,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4.4%가 “폭력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 반응은 이와 상이했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이나 커뮤니티를 확인하면 윌 스미스의 분노에 적극 이입하여 “그럴 만했다“는 식의 온정적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처럼 한국은 폭력을 하나의 수단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이 폭력에 관대한 이유는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가부장제와 권위주의 갑질 문화와 직결된다. 과거 남성은 군사 독재의 폭력 아래 맞서 싸우다가도, 집이나 직장으로 돌아가면 가부장적인 아버지, 권위주의적 교사나 상사가 되었다. 성에는 과한 억압을 보이는 것 역시 폭력에 관대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스크린 속 여성들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 아래 남성 중심의 시각과 서사로 재현되어 왔다. 로라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을 응시하며, 남성은 응시의 주체로 여성을 시선이 머무는 타자의 영역에서 머물게 해 그녀들을 남성의 욕망과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왔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지배적 형상은 성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기보다는 이를 은폐하고 나쁜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전통적 성 윤리라는 이름으로 성 억압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콘텐츠는 이러한 폭력성과 성의 과잉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 콘텐츠의 폭력성은 비일상적인 폭력을 일상화하여 현실로 끌고 온다. 이는 현실 속 갈등의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폭력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폭력이 그 해결 방안 중 하나인 것처럼 사람들의 생각에 자리 잡는 것이다. 한민경 경찰대 치안대학원 범죄학과 교수와 홍세은 경찰대 치안대학원 박사과정생이 형사 정책연구 겨울호에 발표한 ‘성격 및 폭력 태도 특성에 따른 남성의 유형화와 데이트폭력 차이 분석‘에 따르면, ‘폭력에 대한 우호적이고 허용적인 태도’가 데이트폭력 가해 행동의 결정적 영향 요인이다. 개인의 타고난 기질 차이보다 학습된 폭력에 대한 태도가 실제 폭력 행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폭력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지 않는 이상은 강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폭력적인 현실을 향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지나친 폭력성은 절대 용인될 수 없다. 폭력이 정당한 수단인 것처럼 인식된다면 이는 결국 약자에게만 더 가혹한 현실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의 정당화를 경계해야 한다. 미디어 속 폭력을 소비함으로써 폭력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주체가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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