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늘 Jan 17. 2024

3) 서명의 중요성

빚과 가족의 상관관계

3) 서명의 중요성


퇴직 후 보험회사 총무 경력으로 서울역 근처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휘황찬란한 건물 안에 있는 회사의 직원은 사무실 안 6인이 총원이었다. 임원이 세분, 여직원이 세명인 인원구성이 특별한 회사였다. 일은 많지 않았고 근무시간도 여유롭였고 칼퇴가 허락됐다. 마음은 미래를 꿈꾸며 중어중문과, 방송대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중국어였다. 사춘기 미래를 생각하는 때 '여행하며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므로 여행도 하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꿈은 구체화되어 통역 혹은 번역 더 나아가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외교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취업 후 내내 꿈의 통로라고 생각했던 중국어공부의 염원이 아쉬운 미련으로 남아있었다. 한풀이라도 하듯이 대학교 전공 선택을 할 때 고민 없이 중국어 관련학과를 지원했다.


방송대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 수업이었다. 99년도엔 온라인수업은 드문 형태였다.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공부가 낯설고 어려웠다. 1학년에는 교양과목이 전공과목보다 두 배나 많았다. 대학영어, 대학국어는 난위도가 꽤 높아서 깜짝 놀랐다. 외국어를 혼자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학습관에서 수업이 있다고 해서 참여했다. 매주 평일 선배님이 라오스(선생님)로 수업을 이끌었다.


방송대 1학년은 회사 다니며 공부하며 채워졌다. 2학년이 되기 전에 방송대에서 부천학습관내에 임원이 되었다. 말이 임원이지 권력은 없고 봉사만 하는 말단임원이었다. 학습관별 학생회임원들 방송대학생들이 공부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도왔다. 입학식, 과별 엠티, 과별일일호프, 대동제(축제), 체육대회 등 행사를 주관하고 과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봉사차 타과 국어국문과 엠티에 도우미로 차출됐다. 그게 인연이 되어 연애를 했다.


연애경험이 적고 서툴었던 23살, 임신이 됐다. 남자친구에게만 말했을 뿐 가족들에게도 숨기고 있었다. 속이 안 좋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상태인 입덧이 시작됐다. 살도 찌고 있었다. 눈치 빠른 작은언니가 알게 됐다. 서둘러 남자친구를 집에 인사시켰다. 직장에는 비밀을 유지했다. 서서히 배가 불러왔다. 7개월이 됐을 때 살이 꽤 붙어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됐을 때까지 일했다. 회사 ISO관련 서류를 모두 다 완료한 후 검사까지 마치고 퇴사했다. 8개월 차가 됐을 때 남자친구집으로 들어갔다. 남자친구는 엄마, 형, 형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집에 일이 좀 있어, 가족들 모두 함께 가야 해."작은언니가 급하게 나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엄마와 큰언니, 오빠, 작은언니, 나까지 넷은 어딘가를 향했다. 인천 어느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류에는 연대보증이란 말이 쓰여있었다. "보증을 서는 거야?" 의문의 눈으로 멈춘 나에게 작은언니가 말했다. "넌 서명만 하면 돼. 어차피 내가 살고 있으니 내가 알아서 해" 


살다 보면 빚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매월 찾아오는 신용카드대금을 제때에 갚지 못할 때 카드빚이 생긴다. 돈이 필요해서 신용대출을 받아서 현금을 융통하면 대출빚이 생긴다. 할부형태로 물품을 구매해도 빚이 생긴다. 조금 더 단가가 높은 자동차를 사면 할부금융빚이 생긴다. 그리고 자산인 부동산을 살 때 대출을 이용하면 빚이 생긴다.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몸을 누이고 밥을 먹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매월 월세, 혹은 전세자금대출의 빚이 생긴다. 자가를 구매할 때도 자본금이 적으면 부채를 빌어 자산을 키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살림에 빚을 내고 돈이 많은 사람은 레버리지효과를 내기 위해 빚을 낸다. 나의 첫 빚은 대학등록금이었다. 두 번째 빚은 아버지의 병원비 필요로 직장신용대출을 받은 2천만 원이다. 세 번째 빚은 빚을 갚기 위해 빌린 개인빚 300만 원이다. 그리고 네 번째 보증빚이 생겼다.


간단하게 서명만 하면 된다고 했던 작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던 집을 온 가족이 자동상속받았던 게 발단이었다. 그 집은 이미 경매로 넘겨졌고 남은 건 채무만 남아있었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된 집은 사라졌지만 빚은 상속되어 남아있었다. 서명을 했던 사소한 행동은 몇 년 후 취업길을 막았다. 보증보험증권이 끊기지 않았고 결국 채무를 오롯이 내 명의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채무를 모두 갚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계산해 보니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갚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